이성훈 포지티브플로 대표, 슬립테크 도전
AI 센서로 체온·습도 맞춰 밀착 냉난방
“개인화 공조가 에너지 절감 해법”
19년간 원자력 시설의 극한 공조(HVAC)를 책임지던 베테랑 엔지니어의 시선이 하루의 3분의 1을 머무는 ‘침대’로 향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사내벤처로 출발한 포지티브플로의 이성훈 대표.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도 에어컨 대신 자동차 통풍 시트 하나로 등줄기가 서늘해지듯, 그는 방 전체가 아닌 ‘내가 누운 공간’의 공기만 통제하는 획기적인 ‘개인화 공조’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 대표는 “공조기술은 발전소 등 산업시설에서만 쓰이는 기술이 아니라 자동차와 건물, 병원 등 공기가 있는 모든 공간에서 이미 쓰이고 있다”며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인 침대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년 공조 외길…원전 기술을 일상으로
원자력 시설은 막대한 열과 방사성 물질이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인 만큼 정밀한 공조 기술이 필수적이다. 냉난방공조는 최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발열을 제어하는 핵심 기술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 대표는 현대건설 엔지니어로 근무할 당시 공조냉동기계기술사(HVAC&R)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자격증은 공조냉동기계 분야의 최고 수준 국가기술자격이다. 현대건설이 임직원의 기술 역량 강화를 권장하는 회사이다 보니 재직 중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산업시설에서 활용해온 공조 기술을 일상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왔다.
이불을 덮거나 에어컨을 사용해 방 전체의 온도를 조절하는 방식 대신 사람이 실제 잠을 자는 좁은 공간의 온도·습도를 차압을 이용해 더 밀접한 공간의 미세기후를 직접 관리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이는 원자력 시설에서 활용되는 기술과도 원리가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은 창업 아이템으로 이어졌다. 공조 제어 기술로 수면 환경을 최적화하는 침대를 개발한 것이다. 이 기술은 매트리스 내부의 공기 흐름을 제어해 쾌적한 수면 환경을 만드는 방식으로 구동된다.
이는 에어컨으로 침실 전체를 냉방하는 것과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사람이 실제로 누워 있는 공간에 필요한 만큼의 공기를 공급한다. AI 센서를 활용해 수면 중 인체 주변의 열 환경을 관리하고, 수면 데이터를 애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하거나 직접 제어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포지티브플로는 아직 사업 초기 단계지만 중소벤처기업부가 창업기업의 연구개발·사업화를 지원하는 ‘팁스’(TIPS) 후보에도 선정됐다.
팁스는 우수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스타트업을 민간 투자사가 발굴하면 정부가 연구개발 자금 등을 연계 지원하는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그는 “사람에게 가장 가깝게 적용할 수 있는 냉난방 공조 기술이 무엇일까를 고민했고, 그 답이 침대였다”고 말했다.
◇자동차 통풍시트에서 찾은 ‘개인화 공조’
포지티브플로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내벤처 프로그램인 ‘제로원 컴퍼니 빌더’를 통해 출범한 회사이기도 하다. 자동차 산업에서 축적된 기술을 생활과 에너지, 헬스케어 분야로 확장한 사례다.
한여름 자동차 안이 덥다고 에어컨 온도를 계속 낮추는 대신 몸과 직접 맞닿는 좌석에 공기를 순환시키면 적은 에너지로도 쾌적함을 높일 수 있는 것처럼, 집 전체가 아닌 사람이 실제 머무는 공간만 냉난방하는 ‘개인화 공조’ 역시 같은 원리다.
포지티브플로 제품에는 자동차 통풍시트와 유사한 공기 순환 기술이 적용됐다.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공급망 역시 현대자동차 협력사와 기술적으로 연관된 기업들이 적지 않다.
이 대표는 “현대차 출신 스타트업이라는 이름표가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부분이 있다”며 “자동차 통풍시트의 모든 기능을 침대로 가져와 최적의 수면 환경을 만들겠다고 설명하면 투자자들도 기술을 쉽게 이해한다”고 말했다.
◇“쾌적함 포기 않고 에너지 사용량 줄여야”
이 대표는 필요한 공간에만 냉난방을 집중하는 개인화 공조가 주거공간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공간 전체의 온도를 낮추는 대신 실제 사람이 머무는 작은 공간의 온도와 습도를 관리하면 그만큼 냉방 범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포지티브플로는 투자자들로부터 단순 가구·리빙기업이 아닌 AI 헬스케어 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정부와 지자체가 매년 여름마다 에어컨 설정 온도를 높이자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쾌적함과 시원함을 포기하라고 권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공조 기술을 활용해 시원함은 유지하면서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 우리가 제안하는 해법”이라고 말했다.
◇침대 회사 아닌 공조 기술회사로
이 대표의 목표는 회사의 공조 기술을 여러 침대 브랜드 제조사에 솔루션 형태로 공급하는 것이다.
그가 롤모델로 꼽는 기업은 고어텍스와 비브람이다. 고어텍스가 여러 아웃도어 브랜드의 의류와 신발에 적용되고, 비브람의 밑창이 다양한 신발 브랜드에 사용되는 것처럼 포지티브플로의 공조 기술도 여러 침대 브랜드에 적용되는 하나의 기술 표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거대한 산업시설과 작은 침대는 규모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이 대표에게는 모두 온도와 습도, 공기의 흐름을 관리해야 하는 하나의 공간이다.
이 대표는 “공조기술을 통해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게 돕고 환경에도 기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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