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부는 국부 창출과 성장률 제고에 힘쓰고 있지만, 새 기업의 창업 못지않게 이미 있는 우수한 국내기업의 보호도 중요하다. IMF 구제금융 당시 알토란같은 우리 기업이 외국에 팔려나가는 것을 지켜본 쓰라린 경험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지난 8월 3일 정부가 입법예고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가업상속공제 제도사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다. 공제 대상 업종을 법률 별표로 격상하고, 전문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갖춘 기업을 ‘가업’으로 새롭게 정의해 신설 ‘가업상속공제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했다. ‘형식적 요건’에서 ‘실질적 취지’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 개정안이 보험중개업을 여전히 ‘금융·보험업’이라는 형식적 분류에 묶어 일률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보험업을 공제 대상에서 제외해 온 취지는 자본 집약적 금융회사의 거대 자산이 편법적 부의 이전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험업법 제89조에 따라 등록되는 보험중개사는 위험을 직접 인수하지도, 고객 자금을 운용하지도 않는다. 독립적 지위에서 기업의 잠재 위험을 진단·정량화하고 대형 재난 리스크를 글로벌 재보험시장으로 분산시키는 ‘인적 자본 중심의 전문 서비스업’이다. 유형 자산도 거의 없다.

‘금융’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 실질은 엔지니어링·연구개발 서비스업과 다르지 않고, 주식 승계만으로 부가 변칙 이전될 여지도 거의 없다. 실제로 같은 국가 자격에 기반한 건축사의 건축설계업, 기술사의 엔지니어링업은 이미 별표에 당당히 올라 있다. 기준은 자격증의 유무가 아니라 업의 실질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위험을 진단하고 글로벌 재보험을 설계하는 보험중개업만 배제될 이유가 무엇인가.

조세 회피가 걱정된다면 이번에 신설되는 심사위원회를 활용하면 된다. 단순 모집과 수수료 분할에 치중하는 대리점형 법인은 엄격히 걸러내고, 기업보험 매출 비중, 위험관리 전문 인력 보유 비율 같은 객관적 기준으로 심사한 뒤 사후관리를 엄격히 요구하면 될 일이다.

가업상속공제는 ‘부의 대물림’ 특혜가 아니다. 승계자는 가업을 계속 경영하고 고용을 유지해야 하며, 요건 위반 시 공제받은 세액을 추징당한다. 물려받는 것은 안락한 부가 아니라 막중한 책임이 붙은 사업장이요 종업원의 생계다. 특히 보험중개업의 승계자가 물려받는 것은 금융자산이 아니라 가계와 기업의 위험관리라는 사회보장적 책임이다.

영국, 미국, 독일 등 재난관리 선진국에서 보험중개업은 기업보험 유통의 대표 채널이자 화재, 폭발, 태풍, 지진 등 국가적 재난에 대비하는 기업위험관리 인프라다. 반면 우리 보험중개업은 1996년 OECD 가입과 함께 뒤늦게 도입되어 이제 막 성장 궤도에 올랐다. 그 사이 한국 시장의 약 60%는 외국계 대형 중개회사가 차지했고, 이들이 최근 5년간 본사로 보낸 배당금만 1900억원에 달한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 앞에서 승계를 포기하는 순간 토종 중개기업들은 외국 자본에 넘어가거나 소멸할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 편에 서서 글로벌 재보험사와 요율과 조건을 다퉈 줄 토종 중개사가 사라지면 협상 의 주도권은 통째로 해외로 넘어간다. 반도체 공장 의 설비 배치, 2차전지 공정 데이터, 플랜트 방재 도면 등 위험실사 과정에서 수집되는 국가 기간산업의 핵심 정보가 외국계 회사로 흘러들어가도 좋은가. 국내 보험중개업의 소멸은 한 가업의 단절로 끝나지 않는다. 국가 전체의 위험 분산 인프라에 구멍이 뚫리는 일이다.

가업상속공제의 본질은 특혜의 제공이 아니라 국가 경제에 유용한 사회적·경제적 자산의 단절 없는 승계에 있다. 기업이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위험관리 데이터, 글로벌 재보험시장과의 신뢰, 조직된 전문 인력의 지식 자산이야말로 국부의 진정한 밑천이다.

국회와 정부는 개정안 별표에 한국표준산업분류상 ‘보험 대리 및 중개업’을 명시하되, 보험업법 제89조에 따라 실제 위험관리와 재보험 업무를 수행하는 기술형 중개법인으로 대상을 한정해 엄격히 심사한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부의 편법 세습을 차단하면서도 국부를 지켜내는 균형 잡힌 조세법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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