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투자자가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최초 2조원대, 최종 2600억원대 배상을 요구한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2년 전 내려진 ‘정부 승소’ 판정이 원고의 불복을 물리치고 확정됐다.

13일 법무부에 따르면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가 전날(12일) 오전 5시 25분쯤(한국시간) 중국인 민펑전씨가 앞선 패소 판정에 불복해 청구한 ‘중재판정 취소’신청을 전부 기각했다.

정부는 최종 청구액 2641억원 배상 책임을 완전히 벗었고, 소송비용 15억1283만원과 이자까지 회수할 수 있게 됐다. 양준열 검사가 실무팀장을 맡아온 법무부 국제투자분쟁과가 대응을 주도했다.

강준하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국인 투자자의 한국 정부 상대 국제투자분쟁(ISDS) 소송에서 한국 정부가 최종 승소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준하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국인 투자자의 한국 정부 상대 국제투자분쟁(ISDS) 소송에서 한국 정부가 최종 승소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사건은 민씨가 중국 베이징 화푸빌딩 매입·개발을 추진하고자 2007년 10월 한국내 법인 파이코리아를 설립해 우리은행으로부터 3800억원대 PF 대출을 받아 조달했으나 상환하지 못해 비롯됐다.

우리은행은 대출채권을 넘겨받으면서 주식에 근질권(채권 담보권)을 설정했으며, 총 6차례 채무 상환기한을 연장해줬음에도 민씨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법인의 주식을 외국기업에 모두 매각했다.

민씨는 우리은행의 담보권 실행 적법성을 다투겠다며 민사재판을 청구했으나 2017년 7월 대법원에 패소 판결을 받았다. 동시에 대출 과정에 우리은행 임직원에게 금품·이익을 약속하거나 제공한 의혹으로 횡령·배임·사기 등 혐의로 기소돼 2017년 3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6년형을 확정받기도 했다.

이후 민씨는 우리은행의 담보 주식 매각과 한국의 민·형사 사법절차 등이 위법하고, 한·중 투자협정상 중국인 투자자를 보호할 의무 등 위반이 발생했다면서 2020년 8월 우리 정부에 ISDS를 제기했다. 배상 청구액은 당초 2조원 가량에 달했지만, 절차 진행 과정에서 최종 2641억원 가량으로 줄었다.

2024년 5월 ISCID 원 중재판정부는 민씨의 회사 설립과 주식 취득이 금융기관 임직원 금품 공여로 대출을 불법 조달하려는 계획의 일부라고 판단해, 투자협정상 보호대상이 아니라며 청구를 전부기각하고 한국정부 승소 판정했다. 정부가 소송비용 약 49억1260만원과 이자를 지급받아야 한다고도 봤다.

이에 불복한 민씨는 2024년 9월 원 판정부가 투자협정과 국내법을 잘못 해석했고, 충분한 변론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으며 판정 이유에도 누락·모순됐다며 취소 신청했다. 반면 ICSID 취소위는 원 판정부의 협정 해석이 합리적이고, 충분한 변론 기회가 보장됐으며 판정 이유도 명확히 제시됐다며 기각했다.

ICSID 판정 취소절차는 사실관계와 법률 판단을 다시 심리하는 항소와 달리, ‘판정부의 명백한 권한 일탈이나 중대한 절차 위반 등 제한된 사유’가 인정돼야 판정을 취소할 수 있다. 법무부는 이날 “이번 결정으로 국내법상 위법한 투자는 ISDS에서 보호받지 못한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소송비용 환수에 최선을 다하고, 청구인 측과 협의해 취소결정문 등을 최대한 공개하겠다”고 했다. 법무부는 이번 사건 외에도 앞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엘리엇과의 ISDS 판정 취소절차, 스위스 승강기 업체 쉰들러의 배상 요구 ISDS에 연전연승하며 수천억원 이상 배상 부담을 덜어왔다.

법무부 국제법무국 국제투자분쟁과가 미국계 헤지펀드 론스타와 엘리엇을 각각 상대로 했던 국제투자분쟁(ISDS) 경과에 관해 설명하는 영상이 법무부 공식 유튜브에 ‘법TV’ 컨텐트로 게재됐다.[유튜브 ‘법무부TV’ 영상 갈무리]
법무부 국제법무국 국제투자분쟁과가 미국계 헤지펀드 론스타와 엘리엇을 각각 상대로 했던 국제투자분쟁(ISDS) 경과에 관해 설명하는 영상이 법무부 공식 유튜브에 ‘법TV’ 컨텐트로 게재됐다.[유튜브 ‘법무부TV’ 영상 갈무리]

지난해 11월 ‘론스타 사건’에서 정부의 부분 배상책임을 인정한 중재판정 부분이 취소되면서 당시 원금·이자를 합쳐 약 4000억원 배상의무가 소멸됐다. 이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헐값 인수 후 매각하기 전 절차를 지연시킨 정부에게 책임이 있다며 2012년 약 6조원대 규모의 ISDS를 제기해 시작됐었다.

올해 2월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엘리엇이 승소했던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중재판정에 대한 취소소송에서 ‘국민연금을 국가기관으로 볼 근거가 없다’는 정부 측이 승소했다. 영국 법원이 한국 배상책임을 인정한 기존 판정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해 1600억원 배상 의무가 잠정 소멸했다.

법무부는 2020년 8월 최초의 국제분쟁대응과를 신설한 데 이어, 한동훈 장관 체제이던 2023년 8월 국제투자분쟁과 등 3개 과가 배속된 국장급 국제법무국을 신설해 대형 분쟁사건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한기호 기자(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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