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대 교수 임용 과정에서 경쟁자를 떨어뜨리기 위해 허위 투서를 보낸 50대 교수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해당 교수는 경쟁자의 임용이 무산된 뒤 2년 후 본인이 교수로 임용됐다.
수원지법 형사11단독 지선경 판사는 10일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경기대 교수 50대 A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21년 경기대 한국화 전공 신임 교수 채용 과정에서 임용 대상자로 선정된 경쟁자 B씨를 낙마시키기 위해 허위 사실이 담긴 익명의 탄원서를 학교 이사 등에게 보내 B씨의 명예를 훼손하고 교원 채용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채용 지원자였던 A씨는 투서에서 “B씨가 C교수의 소개로 전 총장에게 수억원의 금품을 주고 부정하게 채용됐다” “C교수가 B씨의 임용을 위해 연구 실적을 변조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제기했다.
A씨는 해당 투서를 학교 이사들과 교수회장, 노조 지회장 등 신규 교원 임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자들에게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투서가 전달된 이후 2021년 8월 열린 경기대 이사회에서 B씨의 신규 임용 안건은 최종 부결됐다. 이후 학교 측의 수사 의뢰와 진상 조사가 진행됐지만, 투서에 담긴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그로부터 약 2년 뒤인 2023년 다시 진행된 교수 채용 절차에서 A씨 본인이 경기대 교수로 임용됐다. 재판에서 A씨는 허위 사실을 고의로 유포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A씨 측은 “당시 해당 소문이 널리 퍼져 있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며 “진상 조사를 촉구하기 위한 공공의 이익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익명으로 투서를 작성한 것은 자신의 채용에 불이익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 판사는 “피해자 B씨는 교수 임용과 관련해 청탁하거나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없고, C교수 역시 돈을 받거나 B씨를 소개한 사실이 없음이 확인됐다”며 “학교 측 진상조사에서도 투서 내용의 진실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소문의 출처로 지목한 교수로부터 그러한 말을 들은 사실이 없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식적인 문제 제기 대신 추적이 어려운 익명 투서를 다수에게 전달해 의혹을 확산시킨 점 등을 고려하면 허위 사실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익명 투서가 이사회에서 임용 안건이 부결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실이 수사 결과 확인됐다”며 “이에 따라 피고인의 의도적인 행위로 실제 채용 절차가 방해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양형과 관련해서는 “익명 투서를 학교 관계자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보내고 단정적이고 비방적인 표현을 사용해 죄질이 좋지 않다”며 “피해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줬음에도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1심 선고를 방청한 피해자 B씨는 판결 직후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몇십 년간 공들였던 교수 임용의 기회를 나이 때문에 잃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 만큼 학교 측이 정해진 원칙과 규정에 따라 A씨의 교수 임용 문제 등을 조속히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경기대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학내 절차에 따라 A씨에 대한 징계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경기대 관계자는 “판결 내용이 정식으로 학교에 전달돼 안건으로 올라오면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징계위원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며 “구체적인 징계 수위는 징계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A씨의 향후 대응 등을 지켜본 뒤 1심 판결을 토대로 징계 절차에 착수할지, 상급심 판단까지 지켜볼지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강태영 기자(pjcg@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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