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에 홍해까지 차단…8월 수출 급감

전쟁 전 700만배럴의 절반도 안 돼…유가 충격

아시아 고객에 보내려면 수에즈·희망봉 우회

후티 공격 홍해 깊숙이까지 확대…확전 우려

홍해와 호르무즈해협 원유 운송량. 연합뉴스 그래픽
홍해와 호르무즈해협 원유 운송량. 연합뉴스 그래픽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데 이어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까지 겹치면서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수출이 1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우디가 수출 경로를 바꾸는 ‘플랜 B’를 잇따라 가동하고 있지만, 동쪽과 서쪽의 주요 해상 수송로가 동시에 위협받으면서 원유 공급 능력 자체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다.

해양 정보업체 케플러에 따르면 지난 8월 사우디의 원유 수출량은 하루 320만배럴에 그쳤다. 이는 1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이란 전쟁이 시작되기 전 사우디의 하루 원유 수출량이 약 700만배럴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쟁 이후 수출 규모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사우디의 원유 수출 감소는 세계 에너지 시장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줄 수 있다. 사우디는 오랫동안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으로서 국제 원유 공급과 가격 안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특히 사우디의 주요 원유 수출 대상이 아시아에 집중돼 있어 수송로 차질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수입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초 사우디는 호르무즈 해협을 주요 원유 수출 경로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미국과 전쟁 중인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사우디는 동서 송유관 가동을 확대해 홍해 연안 항구로 원유를 보내는 우회 전략을 가동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후티의 공격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를 통한 사우디 선박의 운항을 차단하면서 사우디의 ‘플랜 B’마저 사실상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우디가 아시아 고객에게 원유를 공급하려면 홍해를 거쳐 수에즈 운하로 향하거나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는 장거리 항로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 경우 운송 거리와 시간이 크게 늘어나면서 운송비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 역시 사우디의 수출 차질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사우디에서 257억달러어치의 원유를 수입했다. 전체 원유 수입액의 3분의 1을 웃도는 규모다. 사우디산 원유 공급이 장기간 차질을 빚을 경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원유 조달 비용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후티의 공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후티는 지난 7월 20일 사우디 선박의 이동을 차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전 예멘 특사 앨리슨 마이너에 따르면 이후 최소 7척의 사우디 선박이 후티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지난달 말에는 사우디 유조선이 홍해 중부 해역에서 공격받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후티가 예멘 인근 바브엘만데브 해협뿐 아니라 홍해 깊숙한 곳까지 원거리 공격 무기를 이용해 타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문제는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우회로 역시 완전히 안전하다고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우디와 후티 간 충돌이 전면전 수준으로 확대될 경우 홍해 전역의 선박 운항 위험이 커지면서 사우디가 선택할 수 있는 원유 수송 경로 자체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사우디가 오랫동안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으로 군림했지만 이제는 원유를 실제로 세계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또 다른 시험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후티의 대사우디 공격을 이란의 대미전 전략과 연결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NYT는 후티가 자체적인 정치적 목표를 갖고 있지만 사우디를 겨냥한 공격은 세계 공급망에 압력을 가하려는 이란의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런던정경대(LSE)의 중동 전문가 파와즈 게르게스 교수는 후티의 행동으로 이란이 직·간접적인 이익을 얻고 있다며, 사우디와 후티 사이에 전면전이 발생할 경우 세계 에너지 공급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원유시장의 핵심 공급국인 사우디가 호르무즈와 홍해라는 두 개의 주요 해상 통로에서 동시에 압박받으면서 중동의 전쟁이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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