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9년에 개봉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당시 대구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교수였던 배용균 감독이 홀로 제작, 연출, 각본, 촬영, 미술, 편집, 조명 등 제작의 모든 과정을 도맡아 7~8년의 세월에 걸쳐 완성한 독립 영화로, 대한민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꼽힌다. 연기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들이 출연한 이 영화는 1989년 제42회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최고 상인 ‘금표범상’(대상)을 수상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깊은 산사에서 살아가는 노승 ‘혜곡’, 속세의 번뇌를 끊지 못하는 젊은 스님 ‘기봉’, 그리고 어린 동자승 ‘해진’의 3대 세대를 통해 삶과 죽음, 집착과 번뇌,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선종(禪宗)의 불교적 철학을 한 폭의 그림 같은 영상미로 담아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원래 ‘달마조사서래의’(達摩祖師西來意, 달마 대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이라는 중국 선종의 유명한 화두다. 선종을 일으킨 달마가 서쪽인 인도에서 동쪽인 중국으로 온 이유를 묻는건데, 배용균 감독은 이를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바꿨다. 한국을 상정했을 것이다.

불교에서 “달마가 왜 서쪽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달마가 움직인 이유를 묻는 게 아니다. “너의 본래 마음(불성·佛性)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라는 본질적인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한 선종 특유의 역설적인 질문법이다.

불교는 크게 경전(부처님의 말씀)을 중시하는 교종(敎宗)과, 경전 밖의 진리(부처님의 마음)를 중요시 하는 선종(禪宗)으로 나뉜다. 선종은 복잡한 이론 공부나 경전 읽기보다 명상과 좌선(앉아서 하는 명상)을 통해 내 마음속에 있는 부처의 성품을 단박에 깨닫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영어로 ‘젠’(Zen)이 바로 이 선종이다.

달마 대사(보리달마)는 인도 불교의 제28대 조사(祖師)로, 중국 선불교의 창시자이자 제1대 조사(초조 初祖)로 꼽히는 인도 출신의 승려다. 경전 공부(교종)에 치우쳐 있던 당시 중국 불교에 수행과 명상(선종)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보리달마는 본명인 산스크리트어 ‘보디달마’(Bodhidharma)를 한자의 음을 빌려 표기한 음차(音借) 표현이다. ‘보디’(Bodhi)는 ‘보리’(菩提)로 표기하는데 ‘깨달음’(지혜)을 뜻한다. ‘달마’(達摩)는 ‘다르마’(Dharma)의 음차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法) 또는 진리’를 의미한다.

보리달마는 본래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였으나 출가하여 불법을 배웠다고 한다. 6세기 초에 중국으로 건너와 문자가 아닌 마음으로 진리를 깨닫는 ‘선’(禪)을 전파했다.

그와 관련돼선 유명한 일화가 많다. 남북조 시대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양(梁)나라의 무제(武帝)는 달마와 만나 “내가 절을 짓고 스님들을 도왔으니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달마는 “아무런 공덕도 없습니다”고 답했다. 양 무제가 다시 물었다. “무엇이 불교의 성스러운 진리인가?” 달마대사는 “진리는 텅 비어서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형식적인 선행보다 스스로 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함을 지적한 것이다.

달마 대사는 양무제와 뜻이 맞지 않자 북쪽 허베이(河北)성 쑹산(崇山) 의 소림사로 들어가, 뒤편 동굴(달마동)에서 무려 9년동안 벽만 바라보며 좌선 수행(면벽수행, 面壁修行)을 했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달마 대사는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수행하는 제자들이 육체적으로 지치고 병들자, 몸을 단련하고 졸음을 쫓기 위해 신체 운동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 건강 체조가 발전한 것이 소림사의 유명한 기공 비급인 역근경(易筋經)과 세골경(洗髓經)이다. 일종의 신체 단련 및 기공 체조다.

역근경은 ‘근육과 힘줄(筋)을 바꾸어(易) 강인한 몸을 만드는 가르침(經)’이라는 뜻으로, 건강 양생법이자 기공 지침서다. 세수경은 정신과 골수를 씻어낸다는 의미다. 이것이 훗날 외적과 도적을 막는 호신술과 결합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림 무술로 발전하게 됐다. 달마 대사에게 소림사는 고요히 마음을 닦는 ‘선’(禪)과, 몸을 강건하게 하는 ‘무’(武)가 하나로 만난 역사적인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어느 날 신광(神光)이란 자가 제자가 되기 위해 찾아온다. 달마 대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본체만체했다. 신광은 포기하지 않고 한겨울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무릎과 허리까지 눈이 차오를 때까지 밤을 지새우며 기다렸다. 아침이 돼 달마가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지 않는 한 법을 전하지 않겠다”라며 그의 구법 의지를 시험했다. 이에 신광은 주저 없이 칼을 꺼내 자신의 왼쪽 팔을 잘라 흰 눈을 붉게 물들이며 진리를 향한 자신의 간절함과 결연한 의지를 증명해 보였다(斷臂求法, 단비구법). 달마는 이를 보고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신광이 바로 중국 선종의 2대 조사(祖師)인 혜가(慧可)다.

달마와 혜가 간 유명한 선문답이 ‘안심법문’(安心法門)이다. 제자가 된 혜가는 어느날 스승에게 “제 마음이 너무나 불안합니다 스승님.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달마 대사는 “그 불안한 마음을 이리로 가져오너라. 그러면 편안하게 해주겠다”라고 답했다. 혜가가 “아무리 찾아도 불안한 마음의 실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자, 달마는 “나는 이미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라고 말했고, 혜가는 그 순간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후 달마는 가사와 발우를 넘겨주게 되며, 혜가는 2대 조사가 된다.

달마 대사는 죽음을 앞두고 ‘수의육대’(授衣六代)라는 예언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가르침을 전하니 6대까지 이어지리라”라는 뜻이다. 그의 예언대로 중국 선종은 1조 보리달마 - 제2조 혜가(慧可) - 제3조 승찬(僧璨) - 제4조 도신(道信) - 5조 홍인(弘忍) - 제6조 혜능(六祖 慧能)으로 이어지면서 혜능대에 이르러 최고조에 이른다. 한국의 조계종(曹溪 宗) 이름은 혜능이 기거하며 법을 전파한 중국 광동성 조계산에서 비롯됐다.

‘육조단경’(六祖壇經)을 남긴 혜능은 나무꾼 출신으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는 화두가 유명하다. “본래 아무것도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다“라는 뜻이다.

달마 대사는 임종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게송(偈頌)도 남겼다.

吾本來茲土(오본래자토·내가 본래 이 땅(중국)에 온 것은)

傳法救迷情 (전법구미정·법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려 함이었네)

一華開五葉 (일화개오엽·한 꽃에 다섯 잎이 피어나니)

結果自然成 (결과자연성·열매가 자연스럽게 맺히리라)

그의 게송처럼 달마의 가르침은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불립문자’(不立文字·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교외별전(敎外別傳·경전이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며) ▲직지인심(直指人心·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견성성불(見性成佛·자신의 본성을 봄으로써 부처가 된다)이라는 그의 가르침은 중국뿐 아니라 오늘날 한국 조계종을 비롯한 동아시아 선불교의 뿌리가 됐다.

달마 대사는 가르침을 모두 전한 후, 15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붓다 이후의 법맥과 법어를 수록한 송나라 때 불서인 ‘전등록’(傳燈錄)에는 달마 대사가 495년에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다.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와 초기 선종 문헌들에 따르면, 대사는 15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에 노환으로 황하 강변의 우문촌(禹門村)이라는 곳에서 입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자들이 시신을 거둬, 오늘날 하남성 삼문협시 선현에 있는 웅이산(熊耳山) 기슭의 정림사(定林寺, 현 공상사空相寺)에 안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평범한 노환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에 의한 독살’이었다는 얘기도 전한다. 또한 일각에선 달마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웅이산 공상사(空相寺)에 있는 ‘공상탑’(空相塔)은 달마 대사의 유해가 최초로 묻힌 곳이자, 전설적인 부활 일화가 깃든 성지로 꼽힌다.

조선 중기 화가 김명국의 ‘달마도’
조선 중기 화가 김명국의 ‘달마도’

달마 대사와 관련해 그의 모습을 그린 ‘달마도’(達磨圖) 또한 유명하다. 예전 시골 이발소나 집안에도 많이 걸려있던 그림인데, 눈이 부릅뜨고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이 대부분이다. 달마도 중에는 달마가 눈을 무섭게 부릅 뜬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수련을 하던 중 졸음을 이기지 못한 눈꺼풀이 내려 앉자 아예 눈꺼풀을 잘라버렸다는 일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잘라서 내어 버린 눈꺼풀이 차(茶) 나무가 되었다는 설화도 있다. 차를 마시면 잠이 깬다는 얘기다.

한편 선종은 석가모니 부처의 진짜 가르침이 아니라는 비판도 일각에서 존재한다. 역사상 불교의 근본은 부처님의 말씀(경전)을 배우고 계율을 지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종은 ‘불립문자’를 내세우며 경전 공부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전통 불교도들의 눈에는 이것이 부처님의 권위를 부정하는 이단 행위로 보였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가 강조한 핵심 사상은 ‘모든 것은 변화하고, 나라는 실체는 없다’는 ‘무아’(無我)와 ‘연기’(緣起)다. 반면 선종은 “내 마음속에 본래부터 완벽한 부처의 성품이 들어 있다”는 ‘본래성불’(本來成佛)’과 ‘여래장’(如來藏) 사상을 강조한다. 이는 중국 노장사상(도교)의 ‘도’(道)나 유교의 ‘본성’(本性) 개념을 이름만 불교로 바꾼 것이라는 비판이다. 달마 대사가 인도 불교의 28대 조사이고, 석가모니 부처가 가섭 존자에게 말없이 연꽃을 들어 마음으로 법을 전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 같은 일화는 초기 인도 불교 경전이나 역사적 기록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이유로 20세기 후반 일본에선 ‘선종은 불교가 아니다’(Zen is not Buddhism)라는 격렬한 학술 비판이 출현하기도 했다.

강현철 논설실장(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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