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일본 경제가 전후 최장 경기 확장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경기는 좋다는데 실질임금과 소비는 좀처럼 늘어나고 있지 않아서다. '최장 호황'이라지만 국민들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역설이 일본 경제의 현주소다.

일본 내각부가 최근 발표한 7월 경기동향조사에 따르면 경기의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일치지수(동행지수)는 120.6으로 2018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일치지수의 움직임을 토대로 산출되는 경기 기조 판단은 '개선을 보이고 있다'였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경기동향지수연구회'가 이같은 내용이 맞다고 최종 판단하면 일본 경제는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5월 반등한 이후 74개월 연속 확장 국면을 이어간 것으로 기록된다.

이는 '이자나미 경기' 때의 전후 최장 기록을 넘는 것이다. 당시 2002년 2월∼2008년 2월 73개월간 동안 경기 확장기가 이어졌다. 일본은 경기 확장기에 신화 속 인물을 사용한 별칭을 붙이는데, '이자나미'는 일본 건국 신화 속에서 '이자나기'와 결혼해 일본을 창조했다는 여신의 이름이다.

이번 장기 확장의 동력은 과거와 다르다.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경기 확장의 배경에 대해 "역사적인 엔저와 고물가가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엔화 약세는 수출 대기업의 해외 수익을 엔화로 환산한 실적을 크게 끌어올렸다. 여기에 일본 경제가 30년 가까이 시달렸던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면서 명목 매출과 이익도 빠르게 늘었다.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하지만 기록만 놓고 축포를 터뜨리기에는 속사정이 복잡하다. 경제는 6년 넘게 확장하고 있는데 정작 일본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는 2022년 이후 매년 2∼3%씩 오르며 일본은행의 물가 목표를 웃돌았지만 실질임금은 2022년 이후 4년 연속 마이너스에 머물고 있다. 월급이 올라도 물가가 더 빠르게 뛰면서 실제 구매력은 오히려 줄었다는 의미다. 국내총생산(GDP)에서 개인소비 역시 코로나19 이전 최고 수준을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성장의 속도도 과거와 비교하기 어렵다. 지난 2021년 이후 일본의 실질성장률은 1% 초반에 머물고 있다. 연평균 11.5% 성장했던 1965∼1970년 '이자나기 경기' 때는 물론이고, 당시에도 '실감 없는 호황'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자나미 경기 때의 1.6%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번 최장 확장의 상당 부분이 생산과 소비의 폭발적인 증가보다는 인플레이션과 엔저가 끌어올린 명목 성장에 기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표와 체감 경기 사이의 괴리가 일본 경제의 고민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일본 경제의 경제의 성패는 성장의 '기간'이 아니라 '내용'에 달려 있다. 기업 이익과 임금의 명목 상승이 물가를 넘어 실질소득 증가로 이어지고 다시 소비와 투자 확대로 연결돼야 국민이 체감하는 호황으로 바뀔 수 있다. 74개월 연속 확장이라는 기록은 화려하지만 국민의 지갑이 두꺼워지지 않는다면 '전후 최장 경기 확장'이라는 타이틀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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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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