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설치·순찰에서 현상변경 발전하는 수법”

“법적 근거 있는 양 국제사회 오도…법률전 활용”

“대만·남지나해서도 국내법 앞세워 영향력 시도”

“경제적 관계 넘어 주권에 미칠 영향까지 봐야”

미국 하와이 캠프 스미스에 있는 태평양사령부(PACOM) 본부 건물. 연합뉴스
미국 하와이 캠프 스미스에 있는 태평양사령부(PACOM) 본부 건물. 연합뉴스

미국 태평양사령부(PACOM)가 중국의 황해 구조물 설치를 두고 역내 통제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형적인 ‘현상변경’ 시도​라고 평가했다.

중국이 인프라를 설치한 뒤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해당 해역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사실상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수법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미국 측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역내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이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태평양사령부 관계자는 8일(현지시간) 하와이 캠프 스미스의 PACOM 본부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브리핑에서 중국의 황해 구조물 설치와 관련해 “인프라를 배치하고 이를 통제하려 하면서 의도적으로 현상을 변경하는 것은 중국이 매우 흔하게 사용하는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그동안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구조물을 설치하면서 한국 정부와 갈등을 빚어왔다. 잠정조치수역은 2000년 체결된 한중어업협정에 따라 양국의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이 겹치는 해역에 설정된 곳이다.

중국은 이곳에 심해 연어 양식 시설이라는 명목으로 선란 1호를 2018년, 선란 2호를 2024년 설치​했다. 2022년에는 관리시설을 명분으로 석유 시추 설비와 유사한 형태의 구조물도 설치했다. 이 가운데 관리시설은 지난 1월 한중 정상회담 이후 PMZ 밖으로 이동했지만, 선란 1호와 2호는 여전히 남아 있다.

PACOM 관계자는 중국이 이 같은 행동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도 법률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은 자신들의 행동에 법적 근거와 정당성이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며 “실제로는 그런 근거가 없는데도 마치 합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처럼 국제사회를 오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해당 지역을 독점하고 통제력을 확보하려 한다”며 “거점을 마련하고 순찰과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존재감을 키우면서 현상을 변경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측은 이에 맞서기 위해 역내 국가들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함께 폭로하고 함께 맞서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때문에 각국이 대응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각국은 경제적 영향을 넘어 더 멀리 내다봐야 한다”며 “이런 중국의 행동이 자국의 주권과 주권적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PACOM은 중국의 이러한 전략을 ‘법률전’(lawfare)​의 대표적인 사례로 설명했다. 법률전은 법과 법적 논리를 왜곡하거나 오용해 자국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고 법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행위를 뜻한다. 국제법이나 국가 간 합의를 자국에 유리하게 해석해 특정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태평양사령부는 이를 전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법률전 대응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13개국 이상의 동맹국·파트너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법률전 대응 조정그룹을 통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황해뿐 아니라 대만과 남지나해에서 중국이 구사하는 법률전 사례도 소개됐다.

PACOM 관계자는 중국이 대만과 관련해 자국 국내법을 근거로 이른바 ‘비평화적 수단’을 통한 통일에 법적 정당성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이 자국의 관할권이 없는 대만 주변 해역에서도 국내법을 근거로 법 집행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지나해에서도 중국이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자국의 금어기와 해안경비대 관련 국내법이 적용되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필리핀 선박과 어민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사례가 제시됐다.

PACOM 관계자는 “법률전은 오늘날 전방위적으로 활용되는, 믿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도구”라며 “법치주의를 약화시키고 지역의 평화·안보·안정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이번 발언은 미국이 중국의 황해 구조물 문제를 한중 간 해양 갈등을 넘어 중국의 장기적인 역내 영향력 확대 전략의 일부로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중국이 구조물 설치와 지속적인 해상 활동, 국내법 및 국제법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결합해 현장에서의 존재감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에 미국이 경계심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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