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여의도·목동 등 초대형 재건축 사업장들이 '이주 순번 대기'에 비상이 걸렸다.
동시다발적인 재건축으로 2031년까지 무려 24만가구의 멸실이 예고되자, 전월세 대란을 우려한 서울시가 인허가가 늦은 단지부터 이주 시기를 뒤로 미룰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조합 간 '속도전'의 눈치 게임이 시작됐다.
서울 주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서 인허가가 몇 달 지연된 것이 향후 이주·철거 단계에서는 더 큰 사업 지연으로 이어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9일 서울시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오는 2031년까지 정비사업을 통해 주택 총 31만가구를 착공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압구정 재건축 4개 구역 1만여가구, 목동 재건축 14개 단지 5만여가구 등 대규모 사업장이 포함된다. 최근 서울에서 연간 정비사업 착공 물량이 2만가구 안팎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향후 5년간 주택 착공 물량이 크게 늘어나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 사업장이 동일한 시기에 이주·철거에 들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기존 주택 멸실이 단기간에 집중되면 이주 수요가 주변 전월세 시장으로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주거비 상승을 자극할 수 있어서다.
정비사업은 기존 주택의 주민이 이주하고 건물을 철거한 뒤 새 주택을 짓는 방식이어서 착공 전 상당한 규모의 주택 멸실이 불가피하다. 서울시가 2031년까지 추진하는 정비사업에서 예상되는 멸실 물량은 약 24만가구에 달한다. 올해 서울 전셋값이 이미 오른 상황에서 대규모 이주 수요가 한꺼번에 발생하면 전월세 시장 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
서울시와 각 구청도 이에 대비한 이주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양천구는 목동 14개 단지 재건축에 따른 대규모 이주에 대비해 외부 전문기관에 용역을 맡겨 이주 수요와 주변 주택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분석하고 있다.
서울시는 과거 대규모 정비사업의 이주 시기가 겹칠 경우 사업장별 이주 시기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멸실 물량을 관리해 왔다. 단기간에 대규모 이주 수요가 발생해 전월세 시장이 불안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울시가 정비사업 기간 단축을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만큼 과거와 같은 인위적인 속도조절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2010년대 초 반포와 개포 일대에서 재건축 사업장의 이주 시기가 겹치자 서울시가 이주 시기를 조정했던 사례가 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이주 시기를 늦추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인위적인 속도조절이 어려운 만큼 인허가 단계에서 뒤처진 사업장을 이주 후순위로 미는 방식으로 물량을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인허가 단계에서 발생한 몇 개월의 차이가 실제 이주 시점에서는 더 큰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먼저 인허가를 마친 사업장이 이주에 들어가면 뒤늦게 절차를 마친 사업장은 전월세 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이주 시기를 추가로 조정해야 할 수 있어서다.
재건축 건설사업관리(PM) 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에는 개별 사업장의 인허가 일정을 얼마나 단축하느냐가 중요했는데, 앞으로는 주변 사업장과의 속도 경쟁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대규모 정비사업이 동시에 추진되는 지역에서는 인허가를 적기에 마치는 것이 향후 이주 시기를 앞당기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순원 기자 ss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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