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준호 부국장 겸 IT과학바이오부장

한국인의 일상은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과 버스에서 보는 인터넷 뉴스와 유튜브 동영상부터 업무에 활용하는 검색 사이트, 타인과 소통하는 모바일 메신저와 소셜미디어, 퇴근 후 시청하는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는 물론 하루 종일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의 통신 서비스까지 디지털 회원제 서비스가 아닌 게 없다.

플랫폼 기업들은 혁신적인 서비스와 콘텐츠로 유료 가입자를 모았고, 이들 가입자로부터 24시간 데이터를 수집해 축적한다. 이들은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입자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해 플랫폼에 보다 오래 머물게 만든다. 또한 개인별 타깃 광고를 내보내 광고주들로부터 많은 돈을 받는다. 누가 뭐래도 가입자의 기본정보와 행동 데이터는 플랫폼 기업의 핵심 자산이다.

플랫폼 가입자들은 자신들이 가입 때 넘긴 개인정보와, 플랫폼에서 활동하면서 남긴 각종 데이터가 남의 손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누구도 자신의 전화번호나 주소, 신용카드 번호와 같은 개인정보는 물론, 성형외과 상담 내역 같은 사생활이 드러나는 걸 원하지 않는데도 플랫폼에 가입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기업이 개인정보를 보호해 줄 거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보안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이용자들은 플랫폼 가입을 주저할 것이고, 가입했더라도 사생활 노출이 두려워 적극적인 이용을 자제할 것이다. 그러면 플랫폼 기업들은 구독료와 데이터의 기반인 회원을 잃게 되고, 결국 망하는 길로 가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의 플랫폼 생태계가 딱 이런 모습이다. 지난해 4월 SK텔레콤 해킹 사태 이후 예스24(6월), KT(9월), 롯데카드(9월), SK쉴더스(9월), 쿠팡(11월)에 이어 교원그룹(2026년 1월), 듀오(1월), 티빙(5월), 정부 '모두의 창업'(6월), 삼프로TV(8월), 위버스(9월), 그리고 지난 7일 강남언니까지 사이버 공격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했다. 다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SKT 해킹 사태 때만 해도 그룹 총수가 직접 사과할 정도로 사회적 인식이 엄중했다. 소비자의 분노도 컸다. 그러나 이후 거의 매달 크고 작은 플랫폼에서 정보유출 소식이 전해지다 보니 이제는 소비자들도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정도가 됐다. 해킹 소식이 전해져도 또 뚫렸나보다 생각하고 보상책이랍시고 할인쿠폰이나 몇장 주겠지 하며 큰 관심을 갖지 않은 가입자들이 많다. 한국은 정보유출이 일상화된 '해킹 공화국'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상태까지 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람들은 해킹이라고 하면 영화에서 보듯 후드티 입은 컴퓨터 천재가 빛의 속도로 코드를 치며 시스템 보안을 뚫고 귀신같이 데이터를 빼가는 것을 연상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잇따라 발생한 정보보안 사고는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 무관심과 방치, 비용 절감, 인지 후 은폐 등이 불러온 인재였다. 시스템을 부실 관리하다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털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컴퓨터 천재가 아닌 보통 해커라도 열린 문에는 쉽게 들어갈 수 있다. 이제는 인공지능(AI)이 잘 관리된 시스템에서도 취약점을 찾아내는 시대이니 앞으로는 해커들이 더 쉽게 한국 기업과 기관의 열린 문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해 SKT 해킹 사고 이후 정보 보안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는데도 곳곳에서 계속 정보유출이 벌어지는 것을 볼 때 안전조치 의무,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 정보보호 공시제도, 수집 제한 및 파기 의무 등 기존 제도가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기업과 기관들이 보다 강력하게 타인의 정보를 보호하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지나친 규제는 혁신을 가로막지만 이런 분야는 법과 제도가 보다 엄격해져야 한다. 이미 정보유출 사고를 낸 기업을 무겁게 처벌하는 것보다는 유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당국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소비자들도 개인의 데이터가 플랫폼의 이윤 추구를 위한 자산이 아닌,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데이터 주권'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정보 보호에 대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추가적인 유출 사고를 막는 데 도움이 되니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맹준호 부국장 겸 IT과학바이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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