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변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묻지마 초고층'에 자발적 제동을 걸고 있다. 앞다퉈 층수를 올리려던 조합들이 공사비 폭탄과 인허가 지연이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자 '적정 층수 찾기'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초고층의 화려함' 대신 '실속과 사업성'을 택하려는 조합들의 깐깐한 득실 계산기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실속형 층수 다운사이징' 바람이 번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용산구 한강맨션 재건축 조합은 최고 62층으로 재건축하기 위한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2022년 GS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할 당시만 해도 68층 재건축을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이후 사업성 평가를 다시 진행해 층수를 낮췄다.
한강맨션 재건축은 용산구 이촌동 일원의 노후 단지 660가구를 허물고 1668가구의 아파트로 다시 짓는 사업이다.
한강맨션 조합이 최고 층수를 낮추기로 한 것은 62층으로 짓는 것이 한강조망권과 사업성 확보에 더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초고층 재건축을 허용하면서도 별도의 스카이라인 설정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아파트 동을 일률적으로 최고 층수까지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층수를 높인다고 전체 가구 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공사비 부담도 커진다. 건물 높이가 올라갈수록 태풍·지진 등에 견딜 수 있도록 벽체와 기둥 등 주요 구조부를 추가로 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공사기간도 더 길어지게 된다.
이밖에 건축물 높이가 높아질수록 높이와 경관 등에 따른 공공기여 부담이 커져 사업성이 오히려 낮아질 여지가 있다.
건축업계 한 관계자는 "층수가 높아질수록 구조적으로 보강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지고 공사 난도도 높아져 공사비와 공사기간이 함께 늘어나는 구조"라며 "용적률이 정해져 있는 재건축 사업에서는 무조건 높게 짓기보다 가구 배치와 일반분양 물량, 공사비 등을 함께 따져 가장 사업성이 높은 층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영향으로 반포 디에이치 클래스트(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는 서울시의 35층 높이 규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최고 35층의 기존 계획으로 재건축을 진행하고 있다.
인허가 절차를 다시 밟을 경우 사업 일정이 수년 이상 늦춰질 수 있어 기존 계획을 유지하기로 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초고층 재설계에 따른 공사비 증가와 공사기간 연장을 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아파트는 내년 하반기 준공을 앞두고 있다.
업계에선 한강변 다른 정비 사업장에서도 최고 층수를 조정하는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곳은 성수전략정비구역 1~4지구다. 현재 이 일대는 최고 69층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설계와 공사비 산정 과정에서 초고층화에 따른 비용 부담이 커지면 조합이 최고 층수를 낮출 가능성도 있다.
재건축 건설사업관리(PM) 업계 한 관계자는 "층수를 최대한 높여 재건축하는 것이 조합원에게 가장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사비와 공사기간까지 놓고 보면 35층 안팎의 중고층 아파트가 여전히 사업 효율성이 높은 편"이라며 "압구정동 일대처럼 초고급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업장은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성수동 등 다른 한강변 사업장에서는 층수를 조정하는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박순원 기자 ss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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