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장 구축·관련 기업 투자로 데이터 확보
통신 인프라 앞세워 로봇 훈련 시장 선점 나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를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중국 통신사들이 이번에는 로봇 훈련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동안 AIDC를 통해 AI 서버 운영에 필요한 기반 시설 등을 제공한 것을 넘어 피지컬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로봇 훈련 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데이터 수집·가공은 물론이고 모델 학습·평가에 필요한 환경까지 제공해 새로운 수익원을 찾겠다는 구상이다.
7일 신화통신 등 중국 현지 매체에 따르면 차이나모바일(중국이동), 차이나텔레콤(중국전신), 차이나유니콤(중국연통) 등 이동통신 3사는 최근 로봇 훈련장 구축을 중심으로 피지컬 AI 학습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차이나모바일과 차이나유니콤은 로봇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훈련 시설을 직접 구축했고, 차이나텔레콤은 로봇 학습 데이터 전문기업에 잇따라 투자하며 관련 사업에 진출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차이나모바일이다. 차이나모바일은 지난 5월 저장성 항저우에 1200㎡ 규모의 피지컬 AI 훈련장 '링시수샤오'를 구축했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로봇을 원격으로 조종해 실생활이나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작업을 반복시키고, 피지컬 AI 학습에 쓸 데이터를 모은다. 차이나모바일은 자사 로봇뿐 아니라 유니트리, 애지봇, 갤럭시아이 등 6개 업체의 로봇을 훈련시킬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기종에 관계없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할 수 있게 했다. 수집한 데이터를 정제·분류한 뒤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성능을 테스트하는 것 역시 이곳에서 처리한다. 현재까지 100여개 분야에서 모은 데이터는 100만건을 넘어선다.
차이나텔레콤은 로봇 학습 데이터 전문기업에 투자하며 사업 기반을 넓히고 있다. 지난달에는 미펑테크놀로지의 수억위안 규모 투자 유치에 주요 투자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미펑테크놀로지는 사람이 전용 장비를 착용하고 작업하면 손의 움직임과 작업 과정을 기록해 로봇 학습용 데이터로 만드는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다. 주거 공간이나 사무실, 매장, 공장, 물류창고 등에서 데이터를 수집해 지난달 말 기준 100만시간이 넘는 데이터를 축적했다.
차이나텔레콤은 자사의 5G 통신망과 클라우드 인프라를 활용해 미펑테크놀로지와 로봇 학습 데이터를 공동으로 확보하고, 이를 휴머노이드 로봇 업체와 제조기업 등에 제공할 계획이다.
차이나유니콤 역시 지난 4월 로봇 기업들을 위한 피지컬 AI 훈련 시설을 마련했다. 애지봇과 딥로보틱스 등 7개 기업이 이곳에서 로봇을 훈련시킨다. 차이나유니콤은 학습 데이터 수집부터 AI 모델 훈련, 실제 로봇을 이용한 성능 검증까지 지원한다. 현재 산업 현장이나 매장 등 다양한 환경에서 필요한 100여가지 동작을 로봇에 학습시키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80TB에 달하는 학습 데이터를 확보했다.
중국 통신사들이 앞다퉈 로봇 훈련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건 그동안 통신·클라우드 사업을 통해 인프라를 구축해온 데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며 축적한 기술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로봇을 훈련시키려면 방대한 데이터를 주고받을 통신망부터 이를 저장하고 가공할 클라우드, AI 모델을 학습시킬 수 있는 대규모 연산 인프라 등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전국 단위 영업망과 기업 고객과의 접점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피지컬 AI 서비스를 여러 지역과 산업으로 확장하는 데도 유리하다.
통신사들이 로봇 훈련장에 공을 들이는 데에는 피지컬 AI 시장이 커지면서 학습 데이터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에 이미 축적된 방대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학습에 활용하는 생성형 AI와 달리, 피지컬 AI는 로봇이 실제 환경에서 움직이고 사물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현재 중국에서 확보된 실제 로봇 학습 데이터는 약 50만시간으로, 상용화에 필요한 수천만 시간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기본적인 성능을 갖춘 피지컬 AI 모델을 학습하는 데만 약 100만시간, 보다 범용적인 모델을 개발하는 데는 1000만시간 안팎의 데이터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로봇 학습 데이터 확보가 피지컬 AI 경쟁의 주요 과제로 떠오르면서 대규모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훈련 시설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는 것이다.
통신사들에게는 로봇 훈련장이 피지컬 AI 시장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모바일 생태계의 중심이 플랫폼 사업자에게 넘어가면서 통신망을 제공하는 역할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피지컬 AI에서 로봇 학습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단계부터 참여한다면 핵심 사업자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렸다는 것이다.
백종호 서울여대 소프트웨어융합학과 교수는 "기존에는 수많은 데이터가 통신망을 거쳐가더라도 통신사가 이를 직접 확보할 수 없었지만, 로봇 훈련장은 피지컬 AI 학습 데이터가 처음 생성되고 축적되는 곳인 만큼 통신사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첫 관문이 될 수 있다"며 "통신사들이 피지컬 AI 시장에서 핵심 사업자로 자리 잡기 위해 로봇 훈련장에 투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로봇 학습 데이터 관련 통신사들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중국처럼 별도의 로봇 훈련장을 구축해 사업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 트윈이나 실증 공간을 활용해 학습 데이터를 만들고 AI 모델을 훈련·검증하는 등 피지컬 AI 학습에 필요한 환경을 갖춰가고 있다. 정부도 내년 '데이터 트레이닝센터'(가칭)를 구축해 로봇 행동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실증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혜선 기자 hsle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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