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개발사부터 세계적인 게임사까지 신작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게임에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는 이용자들은 심사숙고해 자신이 즐길 게임을 고르고 있다. 이 같은 필터링을 거쳐 이용자들의 관심을 받는 게임은 승리자가 된다. 신생 개발사가 출시한 신작이더라도 이용자의 선택을 받으면 스테디셀러 지식재산(IP)으로 도약하는 게 게임 시장의 작동 방식이다.
7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작의 성공 가능성은 ‘바늘구멍에 실 꿰기’처럼 어려워졌다. 지난해 PC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2만개 가량의 신작이 공개됐다. 전년 대비 10% 가량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대치다. 심지어 최근에는 하루에 신작 100개, 일주일 만에 720개가 출시될 정도다.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한국 게임사로서는 만만치 않은 환경을 만난 셈이다.
◇체급은 갖췄는데… 관심은 여전히 부족
사실 글로벌 관점에서는 한국 게임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을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미국, 유럽에 이어 중국 개발사들도 신작 출시 소식을 전하면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한국은 아니다. 국내 게임사들은 세계 무대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규모는 글로벌 게임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이지만 이들의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는 이용자는 드물다. 내수 시장에서는 이용자의 사랑을 받지만 해외에서는 ‘브랜드’로서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다. 캡콤, 프롬소프트웨어, CDPR, 록스타게임즈, 리리안게임즈 등은 회사 이름만으로 차기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국내 게임사 중에는 이런 경우가 아직까지 없다.
이는 글로벌 게임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팬덤’을 만들어 내지 못한 탓이다.
이에 국내 게임사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스스로를 ‘도전자’라고 일컫고 있다.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곳들조차 신작의 글로벌 성공을 자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독일 쾰른에서 열린 ‘게임스컴 2026’에서는 이 같은 국내 게임사들의 자신감 부족이 한 눈에 드러났다. 전야제 행사인 오프닝나이트라이브(ONL)에서 공개된 한국의 신작들은 형식적인 박수 외에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중국 게임사 호요버스의 신작 공개 때 엄청난 환호가 터진 것과 대비됐다.
크래프톤은 국내 게임사 중 유일하게 신작 5종을 기업·소비자간거래(B2C)관에 출품했다. 많은 이용자들이 방문했지만 일본의 유명 게임사인 캡콤과 세가, 반다이 남코 등과 비교하면 아쉬운 면이 있었다. 한국 게임 중 세계인이 가장 많이 즐긴 ‘펍지: 배틀그라운드’를 보유한 크래프톤임에도 부스 열기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게임 팬에게 직접 찾아가겠다”… 각오 다진 크래프톤
때문에 장태석 크래프톤 글로벌 퍼블리싱 총괄은 이번 게임스컴에서 “지난 10년간 얻은 교훈은 매출, 이용자 트래픽 등 숫자가 아니라 팬덤”이라면서 ‘게임 팬’을 수 차례 강조했다.
장 총괄은 “팬을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면 게임은 언젠가 팬의 일상이 되고, 일상이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면서 “크래프톤이 만들면 재밌다는 말이 팬들에게 당연해지는 날까지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게임과 이용자의 유대를 쌓아 팬들이 자연스럽게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게 크래프톤이 세운 전략이다.
이를 위해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를 떼고 이번 게임스컴에 참가했다. 지난 2년간 배틀그라운드 IP 기반의 휴게 공간을 운영하며 게임스컴 관람객을 맞이했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
올해에는 ‘펍지: 데드넷’, ‘노 로우’, ‘프로젝트 제타’, ‘타래: 언바운드’, ‘에이지 트위스터’ 등 신작 5종을 출품하며 이들 신작만을 부스에 전면 배치했다.
◇몸집은 ‘공룡’인데… 中 게임에 밀리는 존재감
중국 게임사들의 약진은 K-게임의 고민을 더 깊어지게 만든다. 과거 모바일 중심으로 성장했던 중국 게임사들은 이제 PC·콘솔, 오픈월드, 액션 RPG,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등 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해 나가고 있다. 한·중의 게임사가 같은 시장에서 비슷한 장르와 이용자를 두고 직접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국내 게임사에 적잖은 부담이다. 텐센트와 호요버스, 넷이즈게임즈 등을 중심으로 중국 게임사들이 막대한 개발비와 인력을 투입해 완성도 높은 신작을 빠르게 선보이고 있어서다. 이번 게임스컴에서 일부 서구권 이용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한국과 중국의 신작에서 유사한 인상을 받았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글로벌 이용자 입장에서 한국 게임만의 차별점을 찾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게임스컴에서는 국산 신작보다 중국 신작이 더 주목받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ONL에서 공개된 호요버스의 신작 ‘노두스 폴’(Nodus Fall)은 현장에서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받았다. 신작 하나만으로 글로벌 이용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한국 게임사가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분야에서도 최근 중국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넷이즈게임즈의 ‘연운’은 글로벌 누적 이용자 수 1억명을 돌파한 데다, 이번 게임스컴에서 열린 ‘게임스컴 어워드’에서 베스트 모바일 게임상도 수상했다. 서구권 이용자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결국 국내 게임사들이 맞닥뜨린 과제는 단순히 중국보다 더 많은 신작을 내놓는 데 있지 않다. 중국 게임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면서도 ‘한국 게임이기 때문에’, 나아가 ‘이 게임사가 만들었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는 차별화된 경험과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국내 게임사들은 ‘데이브 더 다이버’, ‘P의 거짓’, ‘스텔라 블레이드’, ‘붉은사막’ 등을 선보이며 게임 콘텐츠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을 입증한 바 있다. 이제 국내 게임사에 필요한 것은 또다른 흥행작 뿐만이 아니다. 특정 게임의 성공을 넘어 ‘한국 게임사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글로벌 팬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K-게임의 다음 성장을 좌우할 전망이다.
글·사진=김영욱 기자 wook95@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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