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중국의 인공지능(AI) 굴기가 예사롭지 않다. 딥시크에 이어 문샷AI의 키미, 알리바바의 큐원 등 세계 최상위권 모델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몇몇 선두 기업 외에도 바이두, 텐센트, 화웨이 등 빅테크와 스타트업, 반도체·클라우드 업체까지 가세하면서 중국 AI 산업의 저변도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와 기술 봉쇄에도 중국 AI의 진격이 좀처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이를 미국의 선도 AI 모델을 모방하고 활용한 결과로만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오늘의 중국 AI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중국 AI 굴기의 진짜 힘은 기술을 빠르게 공유하고 적용하며 다시 발전시키는 거대한 '생태계'에 있다.
그 생태계의 중심에 '오픈 웨이트'(Open Weight) 전략이 있다. 어렵게 개발한 AI 모델의 가중치를 과감하게 공개해 다른 기업과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활용하고 개선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딥시크가 대표적이다. 하나의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면 다른 시장 참여자들이 이를 가져다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에 적용한다. 현장에서 발견된 문제와 새로운 수요는 다시 개발 기업으로 전달되고, 이를 토대로 한층 개선된 모델이 나온다. 새 모델은 다시 생태계 전체로 퍼져나가 또 다른 응용과 혁신을 낳는다. 기술 개발과 공개, 응용과 개선이 끊임없이 맞물리며 하나의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구조다.
중국 정부는 이 수레바퀴에 강력한 추진력을 보탠다. 인재 양성과 창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세제 혜택과 정부 조달을 통해 초기 시장을 만들어준다. 초기 시장 형성에는 국유기업들이 활용된다. 지난해 딥시크가 출시된 지 한 달여 만에 중국 중앙국유기업 상당수가 이를 도입한 것이 단적인 예다.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고도 수요처를 찾지 못해 좌초하는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정부가 국유기업을 통한 초기 수요 창출로 메워주는 것이다.
물론 중국 AI에는 한계도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강력한 검열이 작동하고,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로 고성능 연산 자원 확보에도 제약이 있다.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투명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중국 AI 전체의 경쟁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통제와는 별개로 산업 현장에서는 빠른 실험과 응용을 장려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코딩과 수학적 추론, 제조 현장의 문제 해결 등에선 과감한 시도가 이뤄지며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문제는 우리다. 한국은 'AI 3대 강국'을 외치며 독자 AI 모델과 AI 허브 구축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술 개발 자체에 무게가 실려 있다. 정작 개발된 기술을 산업 현장에 빠르게 확산시키고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는 데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하다. 좋은 모델 하나를 만드는 것으로 AI 강국이 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모델을 기업과 공공 부문이 얼마나 빨리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수요가 다시 기술 혁신으로 이어지느냐가 핵심이다. 중국에서 배워야 할 것은 특정 AI 모델이 아니라 기술과 수요가 맞물려 돌아가는 선순환의 속도다.
그렇다고 중국 생태계에 무작정 올라탈 수도 없다. 데이터와 안보, 기술 종속의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 AI 생태계와의 높은 호환성을 유지하면서 중국 오픈 생태계가 가진 장점을 선별적으로 활용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국내 기업과 개발자들이 세계의 다양한 모델과 기술을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그 위에 우리만의 서비스와 산업을 만들어내는 기반을 갖춰야 한다.
AI 패권 경쟁은 이제 누가 가장 뛰어난 모델 하나를 만드느냐의 싸움이 아니다. 누가 더 많은 기업과 개발자, 인재와 자본을 자신의 생태계로 끌어들이고, 기술과 수요가 끊임없이 돌아가도록 만드냐의 경쟁이다. 중국은 이미 그 싸움터에 뛰어들어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이 'AI G3'을 꿈꾼다면 모델 개발 경쟁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기술을 만드는 나라를 넘어서 기술이 가장 빠르게 쓰이고, 개선되고, 다시 세계로 확산되는 나라가 돼야 한다. 우리만의 AI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하고 이를 세계의 혁신 생태계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이제 그 답을 내놓아야 한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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