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 진단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최근 세계 D램시장 점유율 10%를 넘기는 등 중국 반도체가 본격적인 성장세에 진입한 것과 관련, 한국 반도체 산업이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치킨게임’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단순히 생산능력(캐파)을 늘리고 양산 시점을 앞당기는 것만으로는 중국의 자본력과 내수 시장을 앞세운 물량공세를 따돌리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중국 메모리 산업의 부상과 한국 반도체 산업의 대응 전략을 분석한 글을 게재했다.
권 교수는 “지난 6월 말 발표된 3대 메가프로젝트의 핵심은 이러나저러나 역시 반도체 메가팹 전략”이라며 “그 전략의 핵심은 여전히 캐파 확장과 양산 앞당기기의 속도로만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맞닥뜨릴 가장 큰 위험으로 ‘새로운 치킨게임’을 꼽았다. 과거 D램 치킨게임에서는 일본 등 경쟁사의 자본이 먼저 고갈될 때까지 생산량을 늘리는 방식이 주요 전략이었지만, CXMT를 중심으로 한 중국 메모리 산업은 과거와 다른 자금 조달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앞으로 찾아오게 될 치킨게임 턴에서의 공격자는 한국이 아니라 한국의 추격자들”이라며 “그 추격자는 한국이 과거에 사용했던 공략법이 통하지 않는 최초의 상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CXMT의 가장 큰 차별점으로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꼽았다. 권 교수는 “중국 CXMT 뒤에는 일단 그 회사를 망하게 놔둘 수 없는 중국 정부가 버티고 있다”며 이를 ‘국가 백스톱’이라고 표현했다. 메모리 가격이 하락해 수익성이 악화되더라도 정부가 손실을 흡수할 수 있는 구조인 만큼 한국 기업이 과거 치킨게임에서 활용했던 ‘상대방의 자본을 먼저 소진시키는 전략’이 그대로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국가를 상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개별 기업이 물량으로 경쟁하는 것은 승산이 없다는 의미다.
중국 내수 시장도 CXMT의 버팀목으로 지목됐다. 권 교수는 화웨이와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등 중국 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의 메모리 수요를 CXMT의 ‘전방 수요’로 규정했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와 중국 정부의 국산 반도체 사용 장려가 맞물릴 경우 중국산 메모리의 안정적인 수요처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중국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CSP)의 전속 수요가 CXMT의 쩐의 전쟁 최전선에서 당장 투입할 미사일과 폭탄이 되어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CXMT가 이미 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고 투자 재원을 제도화한 만큼, 메모리 업황이 꺾이더라도 일정 수준의 설비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고 봤다.
이 때문에 한국이 캐파 경쟁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게 권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중국 메모리반도체 위협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는 캐파 늘리고 땡겨오기 경쟁은 지속가능한 방식이 아니다”며 “보조금 자본의 캐파 경쟁은 중국이 질 수 없는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대신 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연구개발(R&D) 인프라와 패키징·계측 기술, 국제 공동 R&D 체계 등을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메가팹의 일부를 단순 생산시설이 아닌 국제 공동 R&D팹이나 소재·부품·장비 기술 테스트용 파일럿 라인으로 활용해 생산능력 확대와 기술 경쟁력 확보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메모리 시장의 다운사이클에 대비한 ‘재무적 안전판’도 필요하다고 봤다. 지금과 같은 호황기에 투자 여력을 모두 소진하거나 이익을 배분하기보다 향후 가격 하락과 수요 둔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다운사이클을 전제로 한 세제 지원과 산업 안전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권 교수는 “CXMT의 D램 점유율이 두 자릿수가 되었고, 이들은 펀치 몇 번을 맞아도 쓰러지기 어려운 상대가 되고 있다”며 “몇 년 후의 다운사이클에 찾아올 새로운 성격의 치킨게임에서 한국이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의 풍년기에 준비해야 할 숙제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속도전·전격전 등의 표현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전달할 목적이었다면 이제 충분히 잘 전달됐다”며 “보다 실용적이고 전략적이며, 조용히 전쟁을 준비하고 비상상황을 준비하며 구휼미를 준비하는 차분하고 냉정한 작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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