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총량 2조6400억원 늘렸지만

신한銀 모집인 한도 이틀 만에 소진

남은 규제에 금리까지 올라 차주 ‘이중고’

챗GPT가 그린 일러스트.
챗GPT가 그린 일러스트.

“대출 빗장이 풀렸다는 소식을 듣고 은행에 갔는데 이미 한도가 다 찼다고 하더라고요. 규제가 풀린 게 맞긴 한 건가요?”

오는 11월 초 잔금을 치러야 하는 A씨는 최근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상담을 위해 여러 은행을 찾았지만 번번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 은행은 하루 접수 물량이 1~2건에 불과했고 다른 은행은 원하는 시기에 대출을 실행하려면 아직 신청할 수 없다고 했다. A씨는 “접수가 열리는 날 은행 문이 열리자마자 찾아가야 할 것 같다”며 “대출이 풀렸다는데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 목표를 확대하면서 닫혔던 대출 창구가 다시 열리고 있지만 실수요자들의 ‘대출 오픈런’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은행에 추가로 주어진 대출 여력이 넉넉하지 않은 데다 은행별·채널별 한도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어서다. 주담대 금리마저 연 7%를 넘어 8%대 진입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차주들이 ‘대출절벽’과 ‘고금리’라는 이중고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올해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기존 1.5%에서 3%로 상향했다. 이에 따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액은 4조3400억원에서 6조9800억원으로 2조6400억원 늘었다. 금융감독원은 늘어난 총량을 은행별 상황에 따라 배분해 통보했다.

추가 대출 여력을 확보한 은행들은 잠갔던 대출 빗장을 일부 풀기 시작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1일 대출모집인을 통한 가계대출 접수를 재개했고 하나은행도 같은 날부터 11월 실행 예정인 주담대와 전세대출의 대출모집인 접수를 다시 받기 시작했다. 농협은행은 대면 판매를 중단했던 변동금리형 주담대 판매를 재개하고 비수도권 주담대 만기를 최대 40년에서 30년으로 제한했던 조치와 모기지신용보증(MCG) 제한을 해제했다.

문제는 새로 열린 대출 창구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한은행은 접수를 재개한 지 이틀 만인 지난 2일 오후 5시쯤 대출모집인 채널을 다시 닫았다. 9월 한 달간 배정한 대출 한도가 모두 소진됐기 때문이다. 신규 접수는 다음 달 1일 재개할 예정이다.

신한은행의 대출모집인 한도는 지난 7월에도 같은 달 8일 소진됐고 8월분은 사전 접수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마감됐다. 대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접수 시작과 동시에 신청하는 ‘선착순 경쟁’이 매달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영업점을 통한 신규 대출은 정상적으로 신청할 수 있지만 지점별 물량과 실행 시기 등을 따져봐야 해 실제 대출 가능 여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대출 신청에 어려움을 겪는 실수요자들의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시중은행도 한도가 조금씩 나와 상담한 뒤 신청하려고 하면 이미 마감된다”거나 “신한은행은 하루 두 건만 접수해 당일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경험담이 올라왔다. “한 달 전부터 신청할 수 있다고 안내받았지만 실제로는 실행일을 며칠 앞둔 신청만 가능하다고 했다”는 불만도 나왔다.

일부 차주는 여러 은행의 상담사를 동시에 알아보거나 영업점 개점 시간에 맞춰 직접 방문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대출 가능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매매계약을 체결했다가 집단대출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사례도 등장했다. 총량 규제가 완화됐다는 발표와 차주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상황 사이에 여전히 간극이 있는 것이다.

이는 총량 목표가 늘었어도 일반 차주에게 돌아갈 대출 여력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단대출은 가계대출 총량과 별도로 관리되고 중금리대출 증가분의 70%도 총량 산정에서 제외된다. 추가 공급분 가운데 상당 부분이 집단대출이나 정책성·서민금융에 배정되면 개별 주담대와 신용대출에 활용할 수 있는 규모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 이미 늘어난 가계대출도 은행들의 운신 폭을 좁히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50조6001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5조6240억원 증가했다. 상향된 연간 증가 목표액이 6조9800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 계산한 추가 여력은 약 1조3560억원에 그친다. 은행별로 상반기에 목표치 상당 부분을 소진한 만큼 모든 차주를 대상으로 대출 제한을 한꺼번에 풀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실제 대출 한도를 제약하는 관리 조치도 상당 부분 남아 있다. 하나은행은 대출모집인 접수를 재개했지만 모기지신용보험(MCI)과 MCG 가입 제한을 유지하고 있다. 해당 보증을 이용하지 못하면 소액임차보증금이 대출 한도에서 빠져 실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든다. 국민은행은 주담대 한도를 기존 6억원에서 3억원으로 축소한 조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우리은행의 지점별 대출 한도도 10억원으로 묶여 있다.

하지만 차주들에게 닥친 문제는 대출 문턱뿐만이 아니다. 어렵게 대출을 확보하더라도 높아진 이자 부담을 감수해야 해 ‘대출절벽’과 ‘고금리’라는 이중고에 놓였기 때문이다. 지난 2일 기준 5대 은행의 5년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연 4.74~7.12%로 6개월 전보다 상단 기준 최대 0.5%포인트(p) 올랐다. 고정형 주담대 금리의 지표가 되는 은행채 5년물(AAA) 금리도 지난달 3일 4.335%에서 이달 2일 4.498%로 0.163%p 상승했다.

특히 2021년을 전후해 연 2~3%대의 5년 고정형 주담대를 받은 차주들은 금리 재산정 시점을 맞아 상환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 3억원을 30년 만기 원리금균등상환 방식으로 빌렸을 경우 금리가 연 3%라면 월 상환액은 약 126만원이지만 연 7%에서는 약 200만원, 연 8%에서는 약 220만원으로 늘어난다. 금리가 연 8%까지 오르면 연간 상환 부담이 기존보다 1100만원가량 불어날 수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도 대출금리를 끌어올릴 변수로 꼽힌다. 한은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3.0%로 올리며 두 달 연속 인상을 단행했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요국의 장기금리 상승세까지 이어지면 국내 시장금리와 주담대 금리에도 추가 상승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총량 목표가 확대되면서 이전보다 대출 공급 여건은 나아졌지만 은행별로 남은 여력이 크지 않아 한도나 보증 제한을 한꺼번에 풀기는 어렵다”며 “금리까지 오르고 있어 잔금 일정이 정해진 실수요자들은 대출 가능 금액과 접수 시기를 여러 은행에 미리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진아 기자(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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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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