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법 천안지원(사진=연합뉴스)
대전지법 천안지원(사진=연합뉴스)

병원을 개원하겠다고 약속해 신축 상가 시행사로부터 수십억원의 지원금을 받아낸 뒤, 정작 그 돈을 개인 빚을 갚는 데 써버린 병원 관계자들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병원 개원을 미끼로 거액을 받아낸 뒤 약속을 지킬 능력조차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죄책이 무겁고 죄질이 불량하다고 판단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1부(조영진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 병원 행정원장 A씨에게 징역 3년 6개월, 의사 B씨에게 징역 1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은 2021년 경기 평택의 한 신축 상가에 병원을 개원하겠다며 시행사와 임대차 계약을 맺고 인테리어 공사 지원비 등의 명목으로 A씨가 16억여원, B씨가 2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법은 단순하면서도 치밀했다.

신축 상가 시행사들이 건물 분양과 임대를 위해 병원이나 병·의원을 유치하려 한다는 점을 노렸다. 병원이 들어서면 건물의 상품성이 높아지고 분양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A씨 등은 시행사 대표에게 “인테리어 비용 등 22억5000만원을 지원해주면 건물 3개 층에 여러 병·의원을 개원하고 5년 동안 중도 해지 없이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들의 실제 사정은 약속과 정반대였다.

당시 A씨와 B씨는 각각 수십억원의 빚을 지고 있어 병원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시행사로부터 받은 18억여원 대부분은 병원 개원에 투입되지 않고 각자의 개인 채무를 갚는 데 쓰였다.

병원을 열겠다며 받은 돈으로 병원은커녕 자신들의 빚부터 갚은 셈이다.

더구나 이들은 거액을 받아간 뒤에도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법원은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속여 거액을 편취하고도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해 죄책이 무겁고 죄질이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고 피해자가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는 점도 양형에 고려했다.

이번 사건은 신축 건물에 병원을 유치하려는 시행사의 절박함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더욱 악질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개원을 믿고 수십억원을 지원한 시행사는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떠안게 됐다. 반면 돈을 받은 이들은 당초부터 정상적인 병원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원금을 개인 채무 변제에 사용했다.

‘병원을 열겠다’는 약속은 거액을 받아내기 위한 미끼였던 셈이다.

법원은 결국 A씨와 B씨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병원 개원을 내세워 시행사를 속이고 거액을 챙긴 행위에 대해 법원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정용석 기자(kudlj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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