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미래 전략을 뒷받침할 또 하나의 거대한 축이 미국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을 넘어 철강과 에너지, 물류,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의 기반을 직접 구축하겠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구상이 미국 현지에서 현실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현대제철은 4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어센션 패리시 도널드슨빌에서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HPLS) 기공식을 열었다.
223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부지에는 2029년부터 연간 270만t 규모의 열연·냉연·도금 강판을 생산하는 미국 최초의 전기로 기반 자동차강판 전문 제철소가 들어선다. 올해 4분기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며 총투자비는 58억달러, 우리 돈 약 8조원에 이른다.
현대제철과 포스코, 현대차·기아가 손을 맞잡은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해외 제철소 건설을 넘어 현대차그룹이 그리는 미래 산업 생태계의 한 축으로 평가된다.
지분은 현대제철 50%, 포스코 20%,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15%씩 나눠 갖는다. 국내 철강업계의 대표 기업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글로벌 시장에서는 경쟁을 넘어 협력자로 손잡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정의선 회장은 이날 환영사에서 이번 제철소가 자동차 산업을 넘어 미국의 차세대 산업 기반을 만드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철강은 현대차그룹은 물론 미국의 자동차 기업들이 차세대 모빌리티를 생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AI 데이터센터에서 발전 분야에 이르기까지 핵심 산업 기반을 구축하고 더 안전한 일터를 조성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용 강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넘어,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 필요한 산업 인프라를 현지에서 직접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특히 HPLS는 현대차그룹이 지난해부터 2028년까지 추진하는 26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의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다. 미국 현지 생산 확대와 공급망 강화에 더해 철강까지 현지에서 생산함으로써 자동차 생산을 둘러싼 가치사슬을 한층 촘촘하게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철강의 현지화’ 넘어 탄소저감 경쟁력 확보
HPLS의 또 다른 핵심은 친환경 생산체제다.
현대제철은 미국 최초로 제강 원료인 직접환원철(DRI)부터 최종 철강 제품까지 생산하는 일관 공정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전기로를 활용해 고로 방식과 비교해 탄소배출량을 약 70%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경쟁 구도가 단순히 ‘어디서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를 넘어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느냐’로 이동하는 데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현대차·기아에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 내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 공급망을 확대한다는 구상도 세웠다. 탄소저감 철강을 앞세워 미국 자동차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새로운 공급 거점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입지도 전략적이다. 미시시피강 유역에 위치해 약 7만t 규모의 파나막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항만을 구축할 수 있고, 인근에 대형 철도 노선도 있어 육상과 해상 물류를 모두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현지 생산을 통한 통상 리스크 완화 효과도 기대된다.
정의선 “한국과 미국의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기회”
이번 프로젝트에는 한미 양국의 산업계와 정부 관계자 250여명이 참석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강경화 주미대사,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 윌리엄 키밋 미 상무부 차관 등이 기공식에 자리했다.
정 회장은 “소중한 파트너인 포스코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과 한국, 양국의 미래 세대를 위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랜드리 주지사도 “현대제철의 투자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루이지애나 지역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HPLS를 통해 약 1300명의 직접 고용을 포함해 모두 54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현대제철은 전망했다.
김정관 장관은 이번 사업을 “단순한 제철소 건설을 넘어서는 한미 산업 협력의 상징”이라고 평가했고, 강경화 대사 역시 “한미 관계가 이 사업을 통해 견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협력 역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모델로 주목된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행사 후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국내에서는 경쟁자의 입장이지만 글로벌로 나가서는 서로 협력해 전 세계에 우리 기업의 위상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DRI 전기로로 만든 강재가 자동차용 최고급 강재가 되려면 포스코가 가진 수소환원제철 기술과 자동차 강판 기술이 필요하다”며 양사의 협력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선 회장이 미국에서 첫 삽을 뜬 HPLS는 단순히 자동차에 들어갈 철강을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다.
미래 모빌리티를 중심으로 철강과 친환경 기술, 물류, 에너지, AI 등 산업 전반의 연결고리를 미국 현지에 구축하고, 공급망 변화와 보호무역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현대차그룹의 장기 전략이 집약된 프로젝트다.
자동차를 넘어 미래 산업의 기반을 만들겠다는 정의선 회장의 구상이 223만평의 미국 땅에서 거대한 철강 생산기지의 모습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양호연 기자(hyy@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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