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병사 없이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오래전부터 이 질문에 매달렸다. 병사를 잃지 않고 적을 공격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이상적인 전쟁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우크라이나가 독립기념일을 맞아 수도 키이우에서 선보인 ‘무인 열병식’은 이런 오랜 꿈이 더 이상 공상과학의 영역이 아님을 보여줬다. 하늘에는 드론이 날고, 지상에선 총포를 장착한 무인 차량이 줄지어 움직였다. 전장의 주역이 인간에서 기계로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병사 없는 전쟁’이 이제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풍선에서 드론까지, 상상이 현실로

무인 무기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 이탈리아 독립전쟁 때인 1849년 오스트리아군은 베네치아를 공격하면서 폭탄을 실은 무인 열기구를 띄웠다. ‘풍선 폭탄’이었다. 풍선에 11~14㎏가량의 폭탄을 매달고, 풍선을 띄운 뒤 약 30분이 지나면 폭발하도록 시한장치를 달았다. 오스트리아군은 여러 차례 시험을 통해 해안에서 띄운 풍선이 바람을 타고 베네치아 상공에 도달하는 데 20~30분이 걸린다는 점을 계산해 폭발 시간을 맞췄고, 이런 풍선폭탄 약 200개를 날려 보냈다. 그러나 작전 도중 풍향이 바뀌면서 대부분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베네치아 시내에 떨어진 것은 단 1개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이 타지 않은 비행체로 적을 공격한다’는 발상 자체는 혁명적이었다.

현대적 무인 무기의 싹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움텄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18년 미국은 폭탄을 싣고 목표물을 향해 스스로 날아가는 일회용 비행체 ‘케터링 버그’(Kettering Bug)를 개발했다. 복엽기 형태의 소형 기체에 100㎏이 넘는 폭탄을 싣고, 미리 설정한 거리만큼 자동비행하도록 설계됐다. 목표 지점에 이르면 엔진을 멈추고 날개를 분리해 폭약을 실은 동체가 그대로 추락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정확도가 떨어진 데다 전쟁까지 끝나면서 실전에 투입되지는 못했다. ‘케터링 버그’는 순항미사일과 자폭형 공격 드론의 원형으로 평가된다.

제2차 세계대전은 무인 무기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독일군은 초소형 궤도차량에 폭약을 싣고 원격으로 조종하는 ‘골리아트’(Goliath)를 실전에 투입했다. 성경 속 거인 골리앗의 이름을 땄지만 길이 1.5m 안팎의 작은 크기였다. 내부에 60~100㎏의 폭약을 실은 궤도차량을 케이블을 통해 원격 조종해 적 전차 밑으로 진입시킨 뒤 폭발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속도가 느리고 눈에 쉽게 띄는 데다 조종용 케이블이 끊어지면 움직일 수 없다는 약점이 있어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 대신 무인 차량을 적진으로 보내 공격한다는 발상은 이후 군사용 무인체계 발전의 한 축이 됐다.

무인 무기는 아니지만 소련군이 운용한 ‘대전차견’(對戰車犬·anti-tank dogs) 역시 인간 대신 전장에 투입할 존재를 찾으려는 시도의 하나였다. 10~12㎏의 폭약을 장착한 개가 전차 밑으로 들어가면 등에 달린 기폭장치가 차체에 닿아 폭발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폭탄만 내려놓고 개가 돌아오게 하려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자 이런 방식으로 바꿨다. 1941년 독일군이 침공하자 실전에 투입했지만 문제가 많았다. 포성과 총성에 놀란 개가 소련군 진지로 되돌아오거나 움직이는 전차에 접근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효과를 내지 못했다.

냉전 시대 들어 무인기의 역할은 공격보다는 정찰에서 꽃을 피웠다. 1951년 미국은 최초의 제트추진 무인기 ‘라이언 파이어비’(Ryan Firebee)를 개발했고, 베트남전에서 이를 대규모로 운용했다. 적 방공망 깊숙이 조종사를 보내지 않고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확인됐다. 1982년 레바논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소형 정찰용 무인기 ‘스카우트’(Scout)를 이용해 방공망 위치를 파악하고 레이더를 교란했다. 이후 무인기는 현대전의 핵심 전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1세기 들어서 무인기는 ‘보는 것’에서 ‘죽이는 것’으로 진화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지에서 ‘프레데터’(Predator), ‘리퍼’(Reaper) 등의 무인 공격기를 대거 투입했다. 기지에서 화면을 보며 표적을 추적해 타격하는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전투원이 전쟁터에 가지 않고 전쟁을 수행하는 ‘원격전쟁’이 현실이 됐다.

◆AI가 판단하고 기계가 싸우는 시대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변화는 차원이 다르다. 과거 무인기는 값비싼 첨단무기로 강대국의 전유물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를 값싼 ‘소모품’으로 바꿔놓았다. 상업용 드론에 폭발물을 달아 수백억원짜리 전차를 파괴하고, 장거리 자폭 드론은 값비싼 미사일 역할을 대신하며, 바다에서는 무인정이 함대를 위협한다. 값싼 무기로 상대방의 고가 무기체계를 무력화해 ‘전쟁의 경제학’을 뒤집어 놓았다.

더 중요한 변화는 규모다. 과거에는 인간이 무인기 한 대를 조종했다. 이제는 인공지능(AI)이 여러 대의 드론을 동시에 움직이는 ‘군집전’으로 향하고 있다. 전파 방해로 통신이 끊겨도 스스로 표적을 찾아가는 자율주행 무기도 등장했다. 인간은 점점 전장에서 멀어지는 반면, 기계가 정찰하고 판단하고 공격하는 영역은 넓어지고 있다.

기계는 인간의 눈과 발을 대신하는 수준에서 이제는 총과 칼까지 대신하는 존재로 진화했다. 머지않아 인간의 판단까지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인간 없는 전쟁은 더 이상 미래의 상상이 아니다. 전쟁이 미래를 앞당겼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미래가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에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북한군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면서 드론이 지배하는 현대전의 양상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북한이 이런 실전 경험을 전력과 전술에 반영할 가능성을 가볍게 볼 수 없다. 우리 군의 병력 자원 감소까지 겹치면서 무인화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무인기·무인차량·무인정에 AI와 전자전 능력을 결합해 하나의 전투체계로 통합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지휘체계와 조직, 교리까지 함께 구축해야할 것이다.

박영서 논설위원(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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