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 키이우 도심서 무장 충돌…3명 부상
러시아 상대 비밀작전 경쟁하던 두 기관 충돌
영향력·자원 놓고 갈등…아파트 수색이 발단
젤렌스키 “사건 경위 명확히 설명하라” 지시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도심에서 우크라이나의 양대 정보기관 특수부대가 총격전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러시아를 상대로 비밀작전을 수행해온 국가보안국(SBU)과 국방부 정보총국(HUR) 사이의 영향력 경쟁과 갈등이 무력충돌로까지 번진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SBU 특수부대와 HUR 산하 특수부대는 지난 1일(현지시간) 늦은 밤부터 2일 새벽까지 키이우 도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대치하다 총격전을 벌였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이 과정에서 HUR 특수부대원 3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현지 주민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에는 아파트 건물 주변에 핏자국이 남은 모습도 담겼다.
충돌의 직접적인 발단은 러시아 국적 전투원의 구금 문제였다. HUR의 지휘 아래 우크라이나 편에서 싸우던 ‘러시아 의용군단’ 부지휘관 스테판 칼푸노프를 SBU가 지난달 말 체포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칼푸노프의 변호인에 따르면 SBU 특수부대 ‘알파그룹’은 1일 칼푸노프를 데리고 HUR 산하 ‘티무르 특수부대’가 임차한 키이우 도심의 아파트를 찾아가 범죄 수사를 이유로 수색을 시도했다. 현장에 있던 티무르 부대원들이 이를 저지했고, 협상이 결렬되면서 양측의 대치가 격화됐다. 이후 티무르 지휘관이 추가 병력을 이끌고 현장에 도착했고, 결국 수십 명의 무장병력이 맞서는 상황에서 총격까지 발생했다.
SBU는 다른 설명을 내놨다. 러시아의 테러 행위를 수사하던 자국 요원들이 무장한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으며, 요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주장이다. 칼푸노프는 총격전 이후 풀려났지만, 그가 어떤 혐의로 체포됐는지는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SBU와 HUR 사이의 해묵은 경쟁심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두 기관은 모두 러시아 본토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을 대상으로 정보 수집과 사보타주, 암살 등 고위험 비밀작전을 수행해왔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작전 영역과 성과를 둘러싼 양측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HUR 내부의 권력구도 변화가 변수로 거론된다. HUR을 오랫동안 이끌었던 키릴로 부다노우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난 1월 올레흐 이바셴코가 새로운 HUR 수장에 올랐다. 그러나 HUR 산하 티무르 특수부대의 상당수는 여전히 부다노우에게 강한 충성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다노우 역시 HUR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전쟁 수행의 핵심 축인 정보기관들이 수도 한복판에서 무력충돌을 벌였다는 사실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도 부담이다.
최근 고위 당국자들의 부패 의혹과 일부 군부대의 비위 문제까지 겹친 상황에서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기관들마저 내부 갈등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사건 이후 양대 정보기관 수장들에게 충돌 경위를 국민에게 명확하게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부다노우 비서실장도 “누구도 군인을 불법적으로 납치하거나 우리 도시의 거리에서 총을 쏠 권리는 없다”며 우크라이나의 주요 수사기관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총격전은 러시아와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 내부의 안보 권력 경쟁 역시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전시에는 정보기관 간 경쟁이 대외작전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지휘체계와 법적 권한을 둘러싼 충돌로 이어질 경우 전쟁 수행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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