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월 만에 1350원대 진입
수출 호조·엔화 강세에 하락 압력
저가 매수세가 추가 낙폭 제한할 듯
원·달러 환율이 두 달 만에 200원 가까이 떨어지며 14개월 만에 1350원대에 진입했다. 미국 고용지표 부진에 따른 달러화 약세와 엔화 강세,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은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 물량이 환율을 끌어내렸다. 다만 단기간에 낙폭이 커진 만큼 수입업체와 해외주식 투자자의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당분간 1360원을 중심으로 등락할 전망이다.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30분 기준 1359.3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쳤다. 직전 거래일 주간 종가보다 9.4원(0.68%) 내렸다. 이는 같은 기준으로 작년 7월 2일(1358.7원) 이후 약 1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환율 하락에는 미국 고용지표 부진에 따른 달러화 약세가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8월 오토매틱데이터프로세싱(ADP) 민간고용은 전월보다 3만8000명 증가하는 데 그쳐 시장 예상치인 4만7000명을 밑돌았다. 기존 근로자의 임금 상승률도 전년 동월 대비 3.0%로 전월과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경기동향보고서인 베이지북에서 미국 경제가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고용 증가는 제한적이었다고 진단했다. 고용 둔화가 확인되면서 미국 국채 금리가 하락했고 달러화도 약세를 보였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9.596으로 전장보다 0.081포인트 내렸다.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과 금리 인상에 대한 경계감도 원화 강세를 뒷받침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최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일본 당국자들과 연이어 회동한 데 이어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이달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 인상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엔·달러 환율은 전장보다 1.47엔 내린 158.71엔을 기록했다.
엔화와 원화가 동조하는 흐름을 보이는 만큼 일본 당국이 엔화 강세를 유도하면 원화 매수세도 강해질 수 있다. 국제유가 상승세가 진정되고 위험선호 심리가 회복된 점도 원화에 우호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 물량이 환율을 끌어내리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이어지면서 환율 하락 속도가 빨라지자 수출기업들이 보유한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네고 물량을 계속 내놓고 있어서다. 통상 월말에 집중되던 네고 물량이 월초까지 이월된 데다 최근에는 수출업체들이 달러를 상시 매도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한국의 수출액은 982억5000만달러로 1000억달러에 육박했다. 조업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액은 44억7000만달러로 7월의 41억2000만달러보다 늘어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특히 반도체 수출은 466억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210%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출 호조가 경상수지 흑자로 이어지면서 중기적으로 원화 강세 압력이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7월 초 1560원에서 최근 1360원 안팎까지 약 두 달 만에 200원가량 떨어졌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특수한 시기를 제외하면 단기간 환율 하락 폭으로는 과거 주요 하락 국면에 근접했다.
코로나19 이후인 2020년 3월부터 2021년 1월까지 환율은 1280원에서 1070원으로 210원 하락했다. 미국의 긴축 속도 조절 기대가 커졌던 2022년 11월부터 2023년 1월까지는 1444원에서 1214원으로 230원 떨어졌다. 환율이 1330원까지 추가 하락하면 이번 하락 폭은 과거 두 차례의 주요 하락 국면을 넘어선다.
오재영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원·달러 환율이 1330원까지 하락하면 과거 주요 하락 국면의 낙폭을 경신하게 된다"며 "단기간에 환율이 한 방향으로 1330원까지 내려갈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이달 연준의 금리 결정이 가까워질수록 고용과 물가 등 경제지표에 대한 시장의 민감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추가 하락 여부는 연준의 이달 기준금리 결정과 이에 앞서 발표되는 미국 고용·물가 지표에 달렸다. 최근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30%대에서 60%대까지 높아졌는데도 미국의 재정 우려로 달러화는 뚜렷한 반등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물가가 시장 예상에 부합하고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 달러 약세가 이어질 수 있지만 물가가 예상치를 웃돌 경우 금리 인상 기대가 높아지면서 달러가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1350원대에서 수입업체의 결제 수요와 거주자의 해외주식 투자용 환전 수요가 유입되면서 환율의 추가 하락을 제한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참여자들이 1350원을 1차 지지선으로 인식하면 매집성 달러 매수가 들어오면서 환율이 1360원 회복을 시도할 수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위원은 "약달러와 엔화 동조화, 수출업체 네고 물량에 환율이 하락 압력을 받겠지만 수입업체 결제 등 실수요 저가 매수에 낙폭이 제한될 것"이라며 "해외주식 투자를 늘리고 있는 개인투자자의 환전 수요도 하단을 방어하면서 환율은 1360원을 중심으로 등락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유진아 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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