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하수자원연구센터장
가뭄은 더 이상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는 강원 태백이나 충남 보령처럼 일부 지역에서 반복되는 현상으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발생 지역과 규모를 예측하기 어려운 전국적 재난이 되고 있다. 2023년 광주·전남에 이어 2025년에는 강릉, 올해는 청도를 비롯한 영남권이 물부족을 겪었다. 여기에 기록적인 폭염과 급증한 물수요까지 겹치면서 피해는 더욱 커지고 있다. 유럽 역시 폭염과 가뭄, 산불이 동시에 발생하는 등 기상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후위기가 심화하면서 가뭄은 더 빈번해지고 장기화되고 있다. 문제는 그 결과가 단순한 강수 부족에 그치지 않고 생활과 산업 전반의 물부족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댐과 저수지 등 지표수 중심으로 용수를 공급하는 구조여서 장기간 가뭄이 이어질 경우 제한급수나 단수 같은 비상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하나의 수원(水源)에 의존하는 공급 체계로는 안정적인 물공급을 보장하기 어렵다. 이제는 수원을 다변화, 가뭄에도 흔들리지 않는 물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자원이 바로 지하수다. 흔히 지하수는 가뭄 때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보조 수원’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전체 용수 이용량의 10% 이상을 담당하는 중요한 수자원이다. 무엇보다 땅속에 저장돼 있어 가뭄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기후변화가 심해질수록 그 가치는 더욱 커진다. 생활·농업용수는 물론 대규모 용수를 필요로 하는 첨단산업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도 활용 가치가 크다.
그러나 지하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원이다. 어디에 얼마나 분포하는지, 얼마나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에 개발에는 많은 조사와 비용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잠재력에 비해 활용 수준은 충분하지 못했다.
최근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방법으로 인공지능(AI)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AI 기반 지하수 탐사 플랫폼인 AEGIS(AI-Enhanced Groundwater Interactive Mapping System)를 개발하고 있다. AEGIS(이지스)는 그리스 신화 속 신의 방패이자, 해군 이지스함(艦)의 이름으로, 이 ‘방패’의 상징에 AI를 더해 물부족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겠다는 뜻을 담았다. 2030년까지 개발을 완료해 숨어있는 지하수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내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AEGIS는 두 가지 핵심 정보를 제공한다. 하나는 지하수 산출 유망도다. 농구장 한 개 남짓의 좁은 면적에서 지하수 확보 가능성을 지도로 제시한다. 다른 하나는 지속가능한 공급 가능량으로, 특정 지역에서 장기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지하수량과 그 시간적 변화를 예측해 제공한다.
이러한 정보는 가뭄 발생 시 지방자치단체가 비상용 관정을 신속하게 개발하는 데 활용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산업단지와 첨단산업의 용수 확보, 지하수저류댐 등 국가 물관리 시설의 입지 선정 등에도 중요한 기초자료가 된다. 실제로 2025년 강릉 가뭄 당시 초기 버전의 지하수 산출유망도를 활용해 개발 후보지 선정 기간을 수주 이내로 단축해 비상용수 확보에 기여했다. 앞으로 AI의 예측 정확도와 정밀도가 더욱 향상되면 개발 성공률을 높이고 대응 시간도 며칠 이내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후위기 시대의 물관리는 더 이상 가뭄이 발생한 뒤 대응하는 방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미국·호주·유럽은 이미 지하수를 국가 물관리의 중요한 축으로 활용하며 수원의 다양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하수를 비상수원이 아닌 주요 수자원으로 인식하고, 지하수저류댐 등 기반시설과 함께 과학적인 탐사·관리 체계를 확대해야 한다. 안정적인 물공급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지금,
지하수를 체계적으로 발굴·활용하는 것은 반복되는 가뭄 속에서도 국민의 일상과 산업을 지키는 국가 물안보 전략이다. AEGIS는 그 최적지를 AI로 제시하는 ‘길잡이’가 되어, 이러한 물관리 체계 전환을 앞당기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