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지난달 28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린든 B. 존슨 우주센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르테미스 2호 승무원들에게 훈장을 주는 자리에서 “새로운 국립사관학교(a new national academy)인 우주사관학교(US Space Academy)를 만들겠다”며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는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1802년 설립), 아나폴리스(해군사관학교·1845년), 공군사관학교(1954년), 해안경비사관학교(1876년) 등의 중요성을 하나하나 짚은 뒤 “이제 우주군 차례”라고 말했다.

그 이틀 전인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 국군사관학교 창설 공청회장은 항의와 고성으로 뒤덮였다.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없애고 대전 자운대에 통합 학교를 만들겠다는 정부 계획에 예비역 군인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회의는 내내 파행했지만, 정작 정책 책임자인 국방장관은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다.

같은 시기, 미국과 한국에서 벌어진 두 장면이다. 세계 최강 군사 대국인 미국은 새로 중요하게 떠오른 우주군 분야에 다섯 번째 사관학교를 만들었고, 한국은 있는 사관학교 세 개를 없애고 하나로 줄이려 하고 있다.

미국은 전장이 육지에서 바다로, 하늘로 넓어질 때마다 그때그때 새 사관학교를 만들어 해당 분야의 전문 군인을 양성해왔다. 지금은 육·해·공·해안경비대 넷 모두 각자의 사관학교를 운영한다. ‘각 군의 독자적 전문 인재’를 강조하는 정책이다.

이번에 만드는 ‘우주군판 웨스트포인트’에서는 전투 요원은 물론 우주비행사, 엔지니어 등을 길러낸다. 미국은 2019년 우주군(US Space Force)을 창설했고, 지금까지는 공군사관학교 졸업생 중 일부가 우주군 소위로 임관해왔는데, 앞으로는 우주사관학교 출신의 보다 전문적인 장교로 우주군을 충원하겠다는 의도다. 새로운 전장이 등장하면 그 영역의 전문가를 키우는 매우 합리적인 정책이다.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로 가려 하고 있다. 국방부 계획은 이렇다. 기존의 육해공 사관학교를 없애고 4년제 통합 국군사관학교를 세워 1~2학년은 공통 교육을, 3~4학년은 군별 전공 교육을 시킨다. 명분은 합동성 강화, 전작권 전환 대비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권이 일부 육사 출신들의 쿠데타 전력에 대한 ‘응징’으로 육사를 폐지하려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쿠데타는 사관학교가 셋이냐 하나냐의 문제가 아니라 일부 정치 군인의 문제이다. 하나로 통합한다고 쿠데타가 줄어든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육해공군 장교들이 모두 끈끈한 동창생이 된다면 쿠데타 시도가 더 용이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졸속으로, 그것도 세계 군사강국들과는 정반대로 통합사관학교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그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공청회에서는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찬성 측 패널인 한 교수가 학교 시설이 낙후돼 이를 개선하기 위해 통합해야 한다며 부실한 침대 매트리스를 예로 들자 반박이 쏟아지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 생도의 장교 후보생다운 믿음직스러운 말이었다. 육사 1학년 곽민재(86기) 생도는 이렇게 말했다. “학교 시설이 노후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은 육군 최정예 장교가 되기 위해 모였습니다. 장교란 무엇입니까.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고 아무리 잠자리가 불편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훈련을 받기 위해 온 사람들입니다. 육사 생도들은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에 모인 것이 아닙니다. ‘학교 시설이 노후화되고 낙후됐다는 이유로 사관학교를 다니기 싫어하니 학교가 통합돼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열아홉 살 생도의 말이 통합을 옹호하는 국방부 간부들의 말보다 진실되게 들렸다. 시설 노후는 통합에 소요될 막대한 예산의 일부로 리모델링하면 된다. 애매한 정치적 목적 때문에 육해공군의 정체성과 전통을 없애서는 안 된다.

마침 방위 출신의 안규백 장관을 대신해 예비역 대장 출신인 강신철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신임 국방장관으로 지명됐다. 알아보니 강 지명자는 군 내부에서 선후배들 사이에 신망이 높았다. 일부 진보, 보수 쪽 ‘정치 군인’들과는 다른 풍모도 보이는 듯하다. 부디 청와대를 잘 설득해 급하지 않은 육해공사 폐지 및 국군사관학교 창설 정책을 되돌리고, 삐걱대고 있는 한미동맹과 성급한 전시작전권 전환 정책도 정상화시키기를 기대한다. ‘평화의 시대’에서 ‘전쟁 가능한 시대’로 변한 급박한 국제정세 속에서, 사관학교 통합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들이 많지 않은가.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1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