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필선 ETRI ICT전략연구소 기술정책연구본부 책임연구원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Quantum Computing)은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기술이다. AI는 학습과 추론 능력을 바탕으로 산업 전반에 확산되어 왔고, 양자 기술은 새로운 계산 원리를 구현하기 위한 하드웨어 혁신에 집중해 왔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기술은 최근 각자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AI는 모델 규모 확대에 따른 연산 비용과 에너지 소비 문제를 안고 있으며, 양자 기술은 하드웨어 안정성과 실용화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한계가 서로를 통해 보완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양자는 AI에 새로운 계산 능력을 제공할 수 있고, AI는 양자 시스템의 설계와 제어, 오류 보정을 고도화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Quantum-AI 융합은 단순한 기술 결합이 아니라 두 기술이 서로의 병목을 해소하며 함께 발전하는 새로운 진화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를 세 단계의 진화 프레임워크로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 단계는 ‘병렬적 발전’(Parallel Development)이다. 이 단계에서 AI와 양자기술은 각자의 발전 경로를 따라 독립적으로 성장한다. AI는 이미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성장기 기술인 반면, 양자 기술은 아직 기술적 가능성을 검증하는 도입기 기술에 가깝다. 현재까지의 발전은 대체로 이러한 병렬적 발전의 특성을 보여 왔다.

두 번째 단계는 ‘보조적 결합’(Assistive Coupling)이다. 양자는 AI의 학습과 최적화를 지원하는 계산 자원으로 활용되고, AI는 양자컴퓨터의 회로 설계와 오류 보정, 시스템 제어를 지원한다. 이른바 ‘Quantum for AI’와 ‘AI for Quantum’이 등장하는 단계다. 기술 간 상호작용이 시작되지만 아직은 한 기술이 다른 기술의 성능 향상이나 시스템 구현을 지원하는 비대칭적 관계가 중심이다.

세 번째 단계는 ‘공진화적 통합’(Co-evolutionary Integration)이다. 여기서는 양자와 AI가 더 이상 주 기술과 보조 기술로 구분되지 않는다. 양자의 발전이 AI를 고도화하고, AI의 발전이 다시 양자기술을 발전시키는 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계산과 지능이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통합되고, ‘Quantum for AI’와 ‘AI for Quantum’의 경계도 점차 희미해진다. 결국 새로운 산업 생태계와 기술 패러다임이 형성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현재 Quantum-AI 융합은 병렬적 발전 단계에서 보조적 결합 단계로 이동하는 초기 국면에 있다. 양자 머신러닝(QML), AI 기반 양자 오류 보정, CPU+QPU 하이브리드 컴퓨팅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세계 주요국과 기업들도 이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주목하며 관련 연구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향후 공진화적 통합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두 기술의 접점과 연계성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물류·금융·신약 개발 등 융합 효과가 큰 분야에서 실증을 확대하고, 양자 프로세서와 AI 인프라를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컴퓨팅 환경을 고도화해야 한다.

AI가 양자 기술의 성숙을 촉진하고, 양자가 AI의 계산 한계를 보완하는 선순환 구조를 강화함으로써 두 기술의 공진화를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융합이 스마트폰 혁명을 촉발했고, 클라우드와 AI의 결합은 생성형 AI 시대를 여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앞으로는 양자와 AI의 공진화가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 미래 기술 경쟁의 승자는 양자와 AI 분야의 핵심 역량을 각각 가장 많이 확보한 국가가 아니라, 두 기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융합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이제는 양자와 AI가 함께 만들어 갈 미래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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