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피어나는 국화(菊花)는 동양에서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꼽힌다. 고결한 선비(군자)의 인품을 닮았다는 것이다.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등 ‘매란국죽’(梅蘭菊竹)이 사군자다.

봄의 매화는 추운 겨울이 끝나기 전, 눈 속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겨울의 고난을 이겨낸 굳은 의지와 지조를 상징한다. 여름의 난초는 보아주지 않아도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뜨린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 고결함과 인품을 드러낸다.

가을 국화는 뭇 꽃들이 시드는 늦가을에 홀로 서리를 맞으며 피어난다. 권력이나 유혹에 타협하지 않는 절개와 은일(隱逸, 세상을 피함)을 뜻한다. 겨울의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고 속이 비어 있으며,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 청렴함과 불의에 굴하지 않는 기개다.

문인(文人, 선비)들이 사군자를 시로 쓰고 그림으로 그린 것은 예술 활동을 뛰어넘은 자기 수양의 과정이었다. 붓 한 자루로 먹의 농담만을 조절해 선과 점을 그리는 선비들의 그림을 ‘문인화’(文人畵)라고 부르는데, 사군자는 이 문인화의 핵심적인 소재였다.

중국 역대 묵객(墨客)들은 국화를 아끼고 노래했다. 동진(東晉) 시대의 전원시인(田園詩人)인 도연명(陶淵明, 365 ~ 427년)의 ‘음주’(飮酒) 제5수는 국화를 노래한 명시로 꼽힌다.

結廬在人境 (결려재인경·사람 사는 마을에 초막 짓고 살아가도)

而無車馬喧 (이무거마훤·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네)

問君何能爾 (문군하능이·묻노니, 그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心遠地自偏 (심원지자편·마음이 멀어지니 사는 곳도 절로 외딴 곳이 된다네)

采菊東籬下 (채국동리하·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悠然見南山 (유연견남산·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네)

山氣日夕佳 (산기일석가·산 기운은 해 질 무렵 더 아름답고)

飛鳥相與還 (비조상여환·날아가던 새들은 짝 지어 둥지로 돌아오네)

此中有眞意 (차중유진의·이 속에 삶의 참된 의미가 있으니)

欲辨已忘言 (욕변이망언·말로 표현하려 해도 이미 할 말을 잊었노라)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무심(無心)과 관조(觀照)의 ‘물아일체’(物我一體) 경지다. 이 가운데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네’(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가 최고의 시구로 꼽힌다. 이 시 이후 ‘동쪽 울타리’(동리)는 국화를 뜻하는 단어가 됐다.

이보다 앞서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정치인이자, 중국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애국 시인으로 꼽히는 굴원(屈原, 기원전 340년 ~ 기원전 278년경)도 국화를 읊었다. 굴원은 대표작 ‘초사’(楚辭)의 ‘이소’(離騷) 편에서 ‘朝飲木蘭之墜露兮(조음목란지추로혜·아침에는 목련에서 떨어진 이슬을 마시고), 夕餐秋菊之落英(석찬추국지낙영·저녁에는 가을 국화의 떨어진 꽃잎을 씹노라)’고 노래했다. 부패한 조정에 물들지 않고 지조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가을 국화에 투영한 것이다. 참소에 의해 조정에서 쫓겨난 굴원은 결국 멱라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식(寒食)은 굴원으로부터 유래했다.

이백(李白), 두보(杜甫)와 함께 당(唐)나라 3대 시인으로 꼽히는 백거이(白居易, 772 ~ 846년)는 삶의 애잔함과 가을의 정취를 국화에 담아 사실적으로 노래했다. 대표작은 ‘영국’(詠菊·국화를 읊다)이다.

一夜新霜著瓦輕 (일야신상착와경·하룻밤 새 첫서리가 기와지붕에 살짝 내리더니)

芭蕉新折敗荷傾 (파초신절패하경·파초 잎은 툭 꺾이고 연꽃대도 기울었구나)

耐寒唯有東籬菊 (내한유유동리국·이 추위를 견뎌내는 건 오직 동쪽 울타리 밑 국화뿐)

金粟初開曉更清 (금속초개효갱청·노란 꽃술 새로 피어나니 새벽 더욱 맑구나)

가을밤 첫서리가 내린 뒤 다른 꽃들은 모두 시들어 꺾였음에도, 오직 동쪽 울타리 밑에서 홀로 청초하게 피어난 노란 국화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담백하게 예찬했다.

백거이와 절친했던 당나라 시인 원진(元稹, 779 ~ 831년) 또한 ‘국화’(菊花)라는 시를 남겼다.

秋叢繞舍似陶家 (추총요사사도가·가을 국화 떨기가 집 둘러싸니 마치 도연명의 집 같네)

遍繞籬邊日漸斜 (편요리변일점사·울타리 가를 돌며 꽃 구경하노라니 해는 이미 뉘엿뉘엿 지는데)

不是花中偏愛菊 (불시화중편애국·내가 수많은 꽃 중 유독 국화만 편애하는 것이 아니라)

此花開盡更無花 (차화개진갱무화·이 꽃 다 피고 나면 더 볼 꽃이 없기 때문이라네)

‘이 꽃(국화)이 다 피고 나면 다시 볼 꽃이 없구나’(此花開盡更無花)라는 구절이 명구다.

송나라의 대문호로 여러 차례 유배를 당했던 소동파(蘇東坡, 본명 소식 1037 ~ 1101년)는 국화의 굳센 생명력에 주목, 시련을 견디는 영웅으로 표현했다. 가을 바람에 무참히 꺾이는 다른 꽃들과 달리 비록 시들지언정 끝까지 가지 위에서 꼿꼿하게 죽어가는 국화의 자태를 보며 자신의 굳은 신념을 노래했다.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국화 시는 ‘증유경문’(贈劉景文·유경문에게 주다)이다.

荷盡已無擎雨蓋 (하진이무경우개·연꽃은 다 시들어 비를 가리던 푸른 우산(연잎)도 없고)

菊殘猶有傲霜枝 (국잔유유오상지·국화는 이지러졌으나 가지는 서릿발속에서도 굴하지 않네)

一年好景君須記 (일년호경군수기·한 해 중 가장 좋은 풍경은 그대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리니)

最是橙黃橘綠時 (최시등황귤록시·바로 유자 빛은 노랗고 귤 빛은 푸르른 이 늦가을이라네)

중국의 문인들에게 국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세속의 유혹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향기를 지키는 자화상이었다.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통 동양화에서 국화 그림은 크게 바위나 곤충과 함께 그려 선비의 지조나 장수를 소망하는 그림과, 도연명 등의 시를 테마로 한 그림으로 나눌 수 있다. 홀로 그려지기보다는 다른 소재와 어우러져 특별한 상징성을 나타낸다.

명대(明代)에는 도연명의 은일 사상을 동경하며 국화와 소나무, 바위를 함께 그리는 화풍이 크게 유행했다.

심주(沈周)의 ‘국화’(菊). [출처 = 대만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홈페이지]
심주(沈周)의 ‘국화’(菊). [출처 = 대만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홈페이지]

명대 회화의 황금기인 ‘오파’(吳派)를 창시한 심주(沈周, 1427 ~ 1509년)가 67세(1494년) 때 그린 ‘사생책’(寫生冊) 중 ‘국화’(菊)는 중국 미술사에서 문인화조화(文人花鳥畫)의 새로운 지평을 연 명작으로, 현재 대만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에 소장돼 있다. 먹의 짙고 옅은 농담(濃淡) 변화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울타리 가에 무성하게 피어난 국화의 소박하면서도 굳센 생명력을 문인화 특유의 담백한 필치로 포착해냈다.

심주의 제자이자 명대 최고의 문인화가인 문징명(文徵明, 1470 ~ 1559년)은 ‘송국도’(松菊圖)를 남겼다. 소나무와 국화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중 “세 갈래 오솔길은 황폐해졌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그대로라네”*라는 구절을 시각화한 것이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선비의 고결한 지조를 상징한다.

진홍수(陳洪綬)의 老蓮橅古: 菊花.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진홍수(陳洪綬)의 老蓮橅古: 菊花.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혼란기를 온몸으로 겪은 진홍수(陳洪綬, 1599 ~ 1652년)는 ‘국화도’(菊花圖)를 그렸다. 그는 도연명처럼 타협 없는 삶을 살고자 했으며, 고풍스럽고 기괴하면서도 단단한 선놀림으로 화병에 꽂힌 국화를 그려내 세상에 굴하지 않는 자신만의 내면을 독창적으로 표현했다.

이밖에 20세기 중국 최고의 거장으로 꼽히는 제백석(齊白石, 1864 ~ 1957년)은 ‘병국도’(瓶菊圖)에서 전통적인 국화 그림을 자신만의 현대적인 화풍으로 재해석했다. 맑고 짙은 묵선으로 이파리를 치고, 그 위에 강렬하고 선명한 노란색과 붉은색 채색을 얹어 화병(瓶)에 꽂힌 국화를 그렸다.

한편 국화를 ‘선비’와 절개의 상징이 아닌 혁명과 뒤집힐 세상을 상징하는 당찬 전사의 꽃으로 탈바꿈시킨 사람도 있다. 당나라 말기 역사를 뒤흔든 반란인 ‘황소의 난’을 일으킨 황소(黃巢, ? ~ 884년)가 그 주인공이다. 황소가 남긴 국화 시는 ‘부제후부국’(不第後賦菊·과거에 낙방한 후 국화를 읊다), ‘제국화’(題菊花·국화를 제목으로 삼아)가 있다.

‘부제후부국’(不第後賦菊)은 과거 시험에 떨어진 황소가 당나라 조정의 썩은 현실에 분노하며, 훗날 장안을 피로 물들이고 권력을 잡겠다는 야심을 국화에 투영한 시다. 장이머우 감독, 주윤발 주연의 영화 ‘황후화’의 모티브가 된 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待到秋來九月八 (대도추래구월팔·가을이 와서 중양절(9월 8일)이 되면)

我花開後百花殺 (아화개후백화살·내 꽃(국화)이 피어나면 온갖 꽃 시들리라)

衝天香陣透長安 (충천향진투장안·하늘을 찌르는 국화 향기 장안성에 흘러들면)

滿城盡帶黃金甲 (만성진대황금갑·온 성안이 황금 갑옷(노란 국화)으로 뒤덮이리라)

여기서 ‘백화’(百花)는 당시 당나라의 부패한 기득권층을 뜻하며, ‘황금 갑옷’(黃金甲)은 국화의 노란 꽃잎이자 훗날 장안성을 점령할 자신의 혁명군을 상징한다. 실제로 황소는 몇 년 뒤 군사를 일으켜 장안성을 함락시켰다.

‘제국화’(題菊花)는 청년 시절 낙방의 쓴맛을 본 뒤, 세상의 불공평함을 한탄하며 지은 시다.

颯颯西風滿院栽 (삽삽서풍만원재·서풍이 스산하게 불어 정원에 가득한데)

蕊寒香冷蝶難來 (예한향냉접난래·꽃 서늘하고 향기 차가워 나비조차 오지 않네)

他年我若爲青帝 (타년아약위청제·내 만약 훗날 봄을 다스리는 신(청제) 된다면)

報與桃花一處開 (보여도화일처개·너(국화)를 복숭아꽃과 함께 한 자리에 피게 하리라)

봄에 화려하게 피어 나비들의 사랑을 받는 복숭아꽃(기득권)과 달리, 추운 가을에 피는 국화(백성 혹은 자신)를 가엽게 여기는 시다. 자신이 세상의 주인(청제)이 돼 소외받는 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에선 음력 9월 9일은 양(陽)의 기운이 겹치는 중양절(重陽節)이다. 9는 가장 기운이 강한 양의 숫자다. 중양절은 가을의 기운이 극에 달해 만물이 결실을 맺는 시기로, 이날 국화의 향과 기운이 고스란히 담긴 술을 마시면 몸 안의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늙지 않으며 오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중양절이 되면 사람들은 국화주와 음식을 싸 들고 높은 산이나 언덕에 올라(등고·登高)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국화주를 마시고 재앙을 쫓는 의식을 행했다.

‘범국’(泛菊)은 잔에 국화 꽃잎을 띄워 술을 마시는 풍습이다. 시인들은 노란 꽃잎이 술잔 위를 맴도는 모습을 보며 시를 짓고 읊었다. 도연명, 백거이 등의 시인들도 중양절 범국 풍습을 즐기며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수유’(茱萸)는국화주를 마실 때, 빨간 열매가 열리는 수유 나무 열매를 주머니에 넣어 향을 맡거나 머리에 꽂는 풍습이다. 국화 향과 수유 향이 더해지면 잡귀와 전염병을 막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통 국화주는 가을에 채취한 국화꽃(감국)을 말려두었다가 찹쌀, 누룩과 함께 버무려 빚어내는 약용 약주다. 은은하고 쌉싸름한 국화 향이 감도는 것이 특징이며, 서민들은 막걸리에 국화 꽃잎을 띄워 마시는 방식으로 간소하게 즐기기도 했다.

도연명의 ‘백의송주’(白衣送酒) 일화는 후대 문인들에게 국화주 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도연명이 중양절에 술이 떨어지자 울타리 가에 멍하니 앉아 국화만 만지고 있었는데 고을 군수가 술을 보내주자 그 자리에서 국화 꽃잎을 띄워 폭음을 했다는 고사다. ‘백의송주’는 “흰옷을 입은 사람이 술을 보내오다”라는 뜻으로, 뜻밖의 좋은 손님이 찾아와 간절히 원하던 도움을 주거나 풍류를 채워주는 극적인 순간을 이른다. 도연명에게 술을 보내준 사람은 그를 흠모한 그 지역의 자사(도지사격) 왕홍(王弘)이다.

강현철 논설실장(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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