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부모 히어로의 활약을 담은 드라마들이 잇따라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유부녀 킬러’는 제목 그대로 아이 엄마 유부녀 킬러를 내세운 설정이고, 그 직전엔 SBS에서 아이 아빠를 내세운 ‘김부장’을 방영했다.

‘유부녀 킬러’의 주인공인 코드네임 ‘킹피셔’는 육아휴직 3년 만에 암살조직에 복귀한 특급 저격수다. 아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어 엄마의 복귀가 가능해졌다는 설정이다. 킹피셔는 기자인 남편과 함께 평범한 맞벌이 부부로 살아간다. 낮에는 일반 회사로 출근하고 퇴근하면 아이 돌봄과 가사노동에 전념한다. 아침엔 정신없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복직 직전까지 시가의 업소에 가서 음식 준비를 돕기도 한다. 그렇게 평범한 주부인데 사실은 킬러인 것이다.

아무리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다고 하더라도 회사에 출근하고, 아침저녁으로 아이 돌보고, 집안일도 하고, 시가 일까지 돕는 주부가 다른 일을 추가로 더 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한 것을 구현했기 때문에 판타지인데, 판타지 중에서도 특히 주부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주부 판타지다.

기존 주말드라마 주부 판타지는 보통 남편에게 버림받고 시댁에서 구박당하고 사회적으로 무시당한 주부가 화려하게 변신해 연하남의 사랑과 사회적 인정을 획득한다는 설정이었다. 반면에 ‘유부녀 킬러’는 액션 장르물로 주부 판타지를 구현했다.

킹피셔는 저녁 때 주부로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낮에 표적을 제거한다. 그 표적은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범죄자들이다. 아내를 죽였지만 가벼운 처벌만 받고 돌아와 딸까지 해치려는 폭력 남편, 아동에 대한 성범죄자 등 특히 여성 시청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악인들을 처단한다.

여성과 어린이를 노린 범죄에 대한 불안이 날로 커져가고 있는데 형사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불신이 있다. 이에 주부가 직접 나서서 사적처단으로 불안의 근원을 제거한다는 대리만족 판타지인 셈이다. 보통 물리력으로 악을 물리치는 역할은 젊고 강인한 캐릭터나 초능력을 지닌 슈퍼 히어로가 맡게 마련이다. 반면에 이 작품은 평범한 맞벌이 가정의 아이 엄마가 직접 악을 처단한다는 설정으로 무력감에 빠진 주부들에게 자존감 회복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김부장’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제목에서부터 ‘김대리’나 ‘김과장’이 아닌 ‘김부장’을 내세우면서 이 작품이 중년 세대의 이야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은 성씨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성씨이기 때문에 김부장이라고 하면 여느 평범한 아저씨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런 평범한 회사원 아저씨이자 딸의 아버지인 주인공이 사실은 특수 공작원 출신이라는 설정이다. 딸이 학교 폭력을 당하자 마침내 힘을 개방한다. 학교 폭력을 비호하면서 권력의 뒷배를 믿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부자를 김부장과 2명의 동료들이 처단하기에 이른다. 김부장의 동료들도 모두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들이다.

일반적인 영상물에서 주인공이 액션 히어로 활동을 할 땐 안경을 벗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김부장’에선 3명의 주인공 일행이 모두 안경을 쓰고 활약한다. 중반에 “안경 쓴 아저씨 무시하지 마”라는 대사까지 나왔다. 이 작품이 아저씨 판타지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의도가 1차원적으로 드러나는 작품들인데 연이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얼마나 인기가 컸는지 ‘김부장’의 소지섭은 올해 SBS 연기대상 1순위로 거론될 정도다. 이렇게 뻔한 설정에도 호응이 이어지는 것은 시청자의 요구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범죄에 대한 공포, 특히 자녀의 안위에 대한 불안이 극도로 고조됐는데 이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 체감되지 않는다. 또 사회적 영향력이 크게 줄면서 그저 한 명의 아줌마, 아저씨가 돼간다는 무력감도 크다. 이럴 때 그들이 직접 멋진 장르물의 주인공 같은 능력자가 되어 모든 악의 근원을 처단한다는 설정은 안정감과 효능감이 동시에 담긴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것이다.

한동안 악인이 몰락한다는 내용의 막장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지만 반발이 커졌다. 그사이 OTT 등에서 장르물이 인기를 끌자 이젠 주부 판타지, 아저씨 판타지가 장르물하고 결합해 액션이 강화되는 형국이다. 중년세대의 무력감, 불안감이 현실에서 해소되지 않는다면 작품을 통해서나마 대리만족하려는 흐름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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