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환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

영사조력법 개정안

비행기가 해외 공항 활주로에 내려앉고 휴대폰을 켜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문자가 있다. 영사 콜센터 안내다. 그 문자를 무심코 넘기기도 했지만, 언젠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정말 위급한 순간이 온다면, 국가는 나를 어디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에게 해외여행은 이제 일상이 됐다. 1989년 120만명이었던 해외여행자 수는 2025년 2955만명으로 늘었다. 그만큼 해외에서 맞닥뜨릴 위험도 커졌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26년 현재 전 세계 분쟁지역은 48곳, 이중 연간 1만명 이상이 숨지는 대규모 전쟁만 8개이다. 여기에 기후변화까지 겹치며 위험의 종류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오늘 비행기에 오르는 국민 가운데 누군가는, 내일 갑작스러운 위기의 한복판에 서게 될 수도 있다.

비교적 최근의 실제 위기 상황을 돌아보았다. 2021년 탈레반의 카불 장악 당시 정부는 ‘미라클 작전’으로, 2023년 수단 무력충돌 때는 ‘프라미스 작전’으로 우리 국민을 대피시켰다. 두 작전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위기 발생부터 실제 대피까지 일주일 내외가 걸렸다. 실행도 ‘대통령의 지시’를 통해 이뤄졌다. 대통령의 별도 지시 없이도 시스템적으로 더 신속하게 이뤄질 수는 없을까. 이것이 우리 의원실이 품게 된 문제의식이다.

외교부가 위험지역에 여행주의보나 여행금지 경보를 내리고는 있지만, 급작스럽고 우발적인 상황에는 유효하게 작동하지 않고 이를 어기는 경우도 있어 완벽한 대응책은 되지 못한다. 현행 영사조력법 제16조 역시 외교부 장관에게 위기 시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재량만 부여한다. 이동수단 투입의 실질적 근거는 시행령 수준에 머물러 법률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관계부처 협의는 법률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정치적 결단에 의존해 왔다. 시스템의 부재이자 제도의 공백이라 할 수 있다.

‘1호 법안’으로 발의한 영사조력법 개정안은 바로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다. 외교부 장관이 재외국민의 긴급한 피난·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관계 행정기관의 장과 지체 없이 협의해 집결지와 이동 방안을 담은 긴급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자력으로 이동할 수단이 없거나 부족한 국민을 위해 항공기·선박·차량 등 적절한 이동수단을 투입하도록 명시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할 수 있다’에서 ‘해야 한다’로, 시행령에서 법률로이다. 이 두 걸음의 차이가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생존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기대한다. 재외국민 보호 체계가 가장 정교하다는 미국조차, 행정명령 제12656호에 따라 국무부가 대피 계획을 총괄·조율하고 국방부가 협조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긴급사태의 대피 지원은 임의 규정으로 남겨두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국은 이 지점에서 미국보다 한발 앞서게 된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에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국가의 책무는 없다”고 강조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을 보호하는 일은 대통령이나 장관 개인의 결단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이에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정부가 위기의 순간에 법에 따라 지체 없이 부처 간 협의에 나서고, 필요한 보호수단을 준비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시 비행기가 낯선 해외 공항의 활주로에 내려앉고 휴대폰을 켜는 순간이 온다면, 그 문자는 더 이상 무심코 지나치는 안내문이 아닐 것이다. 위급한 순간에도 국가가 나를 정말 지켜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제는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 근거가 법에 조속하게 담기기를 강력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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