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세계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인공지능(AI)이 글과 그림, 영상까지 만들어내는 시대에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오래된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일까. 세상은 크게 변했지만 사랑하고 욕망하고 방황하다 결국 돌아갈 곳을 찾는 인간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스크린에서 책으로 번진 ‘오디세이’ 열풍

2800년 전 한 남자가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그가 원한 것은 새로운 왕국도, 더 많은 부와 명예도 아니었다.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고향 섬 이타카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귀향길은 10년이나 걸렸다. 그 남자가 2026년 다시 돌아왔다.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를 통해서다.

영화는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흥행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오디세이 열풍’은 스크린에만 머물지 않는다. 영화의 원전인 ‘오디세이아’를 비롯해 그리스·로마 신화 관련 책을 찾는 독자들이 늘면서 극장에서 시작된 관심이 서점가로 번지고 있다. 최첨단 영상기술로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 옛 고전을 다시 꺼내들게 만든 것이다.

기원전 8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썼다고 전해지는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10년 동안 겪었던 모험을 담고 있다. 그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와 맞서고, 사람을 홀리는 세이렌의 노래를 견뎌내며, 마녀 키르케를 만나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노와 싸운다. 수많은 동료를 잃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도 그의 시선은 한 번도 이타카를 떠나지 않는다.

4권으로 구성된 작품에서 이채로운 것은 오디세우스가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4권은 아버지를 찾아 나선 아들 텔레마코스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오디세우스는 5권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 그의 모험과 방랑을 거쳐 이야기는 다시 이타카로 돌아온다. 떠남과 시련, 방황과 귀환이라는 구조는 이후 수많은 문학과 영화가 되풀이해 온 ‘영웅 서사’의 원형이 됐다.

◆AI 시대에 소환된 2800년 전 ‘인간’

왜 지금 ‘오디세이’일까. 놀란 감독의 선택은 묘한 시대적 역설을 품고 있다. 생성형 AI는 인간 대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과 영상까지 만든다. 몇 줄의 명령어만 입력하면 순식간에 새로운 이야기가 쏟아진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많은 이야기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생산된 시대는 없었다. 그런데 세계 최고 영화감독이라는 놀란은 새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대신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되풀이해 읽어온 가장 오래된 이야기 가운데 하나로 돌아갔다.

‘오디세이아’가 2800년을 살아남은 이유는 괴물이나 신들의 마법 덕분이 아니다. 그 안에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부터 그렇다. 그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다. 영리하지만 교활하고, 용감하지만 오만하다. 호기심을 참지 못해 위험에 뛰어들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부하들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한다.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은 욕망도 포기하지 못한다. 결국 부하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게 하면서 자신은 돛대에 묶어달라고 한다. 유혹에 넘어갈 것을 알면서도 그 유혹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모순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28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세이렌은 사라졌지만 스마트폰 속 알고리즘은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를 부른다. 돈과 권력, 명예와 성공의 유혹도 여전하다. 인간은 여전히 사랑받기를 원하고, 성공을 갈망하며,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 선택을 후회하고 욕망에 흔들리며 때로는 오만 때문에 실패한다. 세상은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흔들리고 고민하는 인간은 놀랄 만큼 그대로다.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오디세이아’의 핵심 주제는 모험보다 ‘귀환’에 있다. 오디세우스 앞에는 고향 이타카보다 매혹적인 선택지도 있었다. 님프 칼립소는 자신의 섬에 남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멸의 삶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오디세우스는 거부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늙고 죽는 인간의 삶, 그리고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이었다.

바로 여기에 ‘오디세이아’가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비밀이 숨어 있다. 인간은 더 멀리 가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하지만 어느 순간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묻게 된다.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가 그 답이었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이타카’는 가족일 수도, 고향일 수도, 지키고 싶은 가치나 삶의 방식일 수도 있다. 이런 ‘이타카’의 의미는 AI 시대에 더욱 묵직해진다.

AI는 인간을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로 데려가고 있지만, 삶의 목적과 방향까지 정해주지는 못한다. 오디세우스가 수많은 유혹과 시련을 이겨내며 끝내 찾아간 곳은 새로운 세계가 아니라 자신이 떠나온 이타카였다. AI 시대에 다시 돌아온 영화 ‘오디세이’는 그래서 이렇게 묻는다. 이 거대한 변화의 항해 끝에 우리가 돌아가야할 ‘이타카’는 어디인가.

박영서 논설위원(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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