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해협 통제 공언하나 오만측 통로는 미군이 통제

오만항로 지난주 하루 평균 12척 통과…전쟁 전 10%

미 해군이 순찰 강화하면서 이란 장악력 약화 나타나

파이프라인 이용도 활발…원유 하루 최대 800만배럴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선박들. 로이터 연합뉴스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선박들. 로이터 연합뉴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 해군의 순찰 강화로 실제 선박 통항에서는 이란의 영향력이 갈수록 약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2주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의 80% 이상이 이란 측 항로가 아닌 해협 남쪽의 오만 측 항로를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란이 해협 통제를 공언하며 오만 측 항로를 이용하는 선박들을 위협하고 있지만, 미국 해군이 보호를 약속하면서 선박들이 이란의 요구를 사실상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CNN이 인용한 해운 데이터 업체 케이플러 자료에 따르면 최근 2주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 가운데 80% 이상이 유엔이 승인한 오만 측 항로를 이용했다.

선박 위치발신기와 위성 데이터를 추적하는 케이플러는 한 달 전만 해도 오만 측 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이 거의 없었다고 분석했다. 케이플러 원유 분석 부서 책임자 호마윤 팔라크샤히는 “이란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해협 통제권을 상실했다는 관측이 갈수록 우세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만 측 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은 지난주 하루 평균 12척으로 늘었다. 다만 전쟁 직전 하루 130여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미국 해군의 순찰 강화가 이란의 실질적인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이 정상화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오만 측 항로를 지나는 선박에 대한 공격 위험은 여전히 존재한다. 영국해사무역기구(UKMTO)에 따르면 최근 며칠 사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선박 2척이 정체불명의 투사체 공격을 받았다. 합동해양정보센터(JMIC)는 이 가운데 한 선박에서 선원 1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다른 선박에서도 승조원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은 두 공격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 해군의 보호 아래 오만 측 항로를 선택하는 선박은 늘고 있다.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산유국들은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을 ‘셔틀선’처럼 활용해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오만만까지 원유를 운송한 뒤 고객 선박에 환적하는 방식으로 해협의 위험을 분산하고 있다.

원유 수송에서도 변화가 뚜렷하다. 전쟁 전 하루 평균 2100만∼2200만배럴에 달했던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 및 석유제품 통과량은 최근 평균 500만배럴 수준으로 급감했다. 반면 페르시아만에서 파이프라인 등 해협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운송되는 원유와 석유제품은 하루 평균 700만∼800만배럴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 중요성이 일부 약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호르무즈해협은 전쟁 발발 전 세계 석유·가스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던 핵심 에너지 수송로였다. 그러나 이번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해상 통제와 산유국들의 우회 수송이 동시에 강화되면서 이란의 봉쇄 위협이 예전만큼의 효과를 내기 어려워지고 있다. 유라시아그룹은 산유국들의 파이프라인 투자가 계속될 경우 2030년까지 호르무즈해협이 세계 석유 무역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절반가량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장기화하면서 국제유가에는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91달러 수준으로 전쟁 직전의 72달러보다 크게 올랐다.

결국 현재 호르무즈해협의 상황은 ‘완전한 봉쇄’와 ‘정상적인 통항’ 사이에 놓여 있다. 이란이 해협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의 순찰과 오만 측 항로, 파이프라인을 활용한 우회 수송이 이란의 봉쇄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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