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무기체계 첫 美 계약

獨·英·이스라엘 등 제쳐

향후 사업비 10조원 기대

2017년 첫 선 이후 9년 뚝심

K9MH의 시연 모습. 한화 제공
K9MH의 시연 모습. 한화 제공

유럽과 중동을 휩쓴 한화의 K9 자주포가 미국까지 뚫었다. 미국은 방위비로만 연간 1000조원 이상을 써서 '천조국'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세계 최대 방산 시장이다.

이번 성과는 최강 국방력을 가진 미국에 처음으로 한국 무기 체계를 수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17년 미국 전시회에 처음 실물을 선보인 지 9년 만의 결실로, K-방산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육군은 18일(현지시간) 한화디펜스USA와 '기동 전술포'(Mobile Tactical Cannon·MTC) 프로그램 시제품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K9 차륜형 자주포(K9 Mobile Howitzer·K9MH) 시제품 6문을 공급하는 계약으로, 계약 금액은 1억30만2961달러(약 1417억원) 규모다.

누적 액면가(cumulative face value)는 2억6290만3274달러(약 3715억원)라고 미 육군은 전했다.

추가로 12문을 발주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돼 있으며, 향후 양산 규모는 약 500문, 사업비는 약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국산 무기체계가 미국과 계약을 체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성과는 당장의 계약 규모보다 '미국'이라는 시장의 상징성에서 의미가 크다.

세계 최대 국방예산을 쓰면서 자국에 록히드마틴, RTX, 노스롭그루먼, 제너럴다이내믹스 등 거대 방산기업을 거느린 미국은 해외 방산기업에는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으로 꼽힌다.

유럽과 중동, 아시아 등으로 빠르게 수출 영토를 넓혀 온 K-방산에도 미국은 사실상 마지막 남은 거대 시장으로 꼽혔다.

이번 수주는 미 육군이 자주포 현대화 전략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방산기업들과 직접 경쟁해 따낸 계약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 육군은 M109 계열을 대체하거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크루세이더와 NLOS-C 등 차세대 자주포 개발을 추진했지만 실전 배치로 이어지지 못했다.

최근에는 사거리를 70㎞까지 늘리는 ERCA 개발에 나섰지만 최대 사거리 구현과 포신 마모 등의 문제로 2024년 기존 개발계획을 중단했다.

이후 전략을 바꿨다. 처음부터 새로운 무기를 독자 개발하기보다 이미 세계 시장에서 기술과 신뢰성을 검증받은 자주포를 신속하게 확보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미 육군은 2024년 방산업계를 대상으로 정보요청서(RFI)를 내고 기술 성숙도가 높은 자주포를 물색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라인메탈과 영국의 BAE시스템즈, 이스라엘 엘빗 등 세계적인 방산업체들이 경쟁에 뛰어들었고, 한화가 K9MH로 시제품 공급계약을 따냈다.

K9도 미국 시장을 겨냥해 모습을 바꿨다. 미군이 주목한 것은 기동성이 높은 차륜형 자주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과 대포병레이더가 전장을 상시 감시하면서 사격 직후 신속하게 이동하는 '슛 앤드 스쿠트' 능력이 포병의 생존력과 직결될 수 있어서다.

K9MH의 시연 모습. 한화 제공
K9MH의 시연 모습. 한화 제공

궤도형 자주포는 험지 주파력과 방호력에 강점이 있지만 차륜형은 도로 기동과 장거리 전개가 쉽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프랑스 세자르와 스웨덴 아처, 독일 RCH155 등이 투입되면서 차륜형 자주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다.

한화는 이에 기존 K9의 기술을 기반으로 자동화 포탑을 적용한 K9MH를 개발했다. 2024년 미 육군의 차륜형 자주포 수요를 포착해 같은 해 12월 개발에 착수했고 올해 1분기 첫 시제품을 완성했다. 개발 착수에서 실물 제작까지 불과 1년여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진출까지는 9년이 걸렸다. 한화는 2017년 미국 지상군협회(AUSA) 연례 전시회에서 처음 K9 실물을 선보인 이후 꾸준히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2022년에는 애리조나주 유마시험장에서 K9으로 미국산 탄약을 실사격하며 호환성을 검증했다. 당시 외국 장비로는 처음으로 XM1113 로켓보조탄을 발사해 53㎞의 사거리를 기록했다. 2024년에는 미국산 정밀유도포탄 '엑스칼리버'를 약 50㎞ 거리에서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세계 시장에서 쌓아온 실적도 미국 진출의 발판이 됐다.

K9은 2001년 튀르키예를 시작으로 폴란드와 인도, 핀란드, 노르웨이, 호주 등 9개국에 수출됐다.

현지 생산분을 포함해 국내외에서 2500문 이상이 생산·운용될 예정이며 세계 궤도형 자주포 수출시장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한화의 목표는 미국에서 K9을 직접 생산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지난 4월 앨라배마주 오펠라이카의 유휴 공장을 3년간 임차했으며 현지 자주포 공급망에도 투자할 계획이다.

단순히 한국에서 만든 무기를 미국에 판매하는 것을 넘어 미국 방산 공급망의 일원으로 들어가겠다는 전략이다. 김호성 국립창원대 GAST공학대학원장은 "국내 방산업계가 글로벌 4강으로 도약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시장이 미국"이라며 "유럽 등에서 수출 영토를 넓혀 온 K방산이 이번 K9 계약을 통해 세계 최대 방산시장인 미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미국은 현재 무기체계와 탄약 등의 생산능력 확충이 필요한 상황으로 한국의 강점인 제조 역량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이번 사업에서 K9이 성능과 생산 역량을 입증한다면 한화뿐 아니라 다른 국내 방산업체와 무기체계의 미국 시장 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주희 기자 ju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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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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