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프로젝트 한강’ 2단계 시동…예금토큰 지갑 50만개로 확대
5대銀, 모바일뱅킹 넘어 ‘디지털 지갑’ 경쟁…결제·송금 시장 공략
토스·카카오페이 등 빅테크도 변수…‘계좌 중심 금융’ 판 흔들릴까
한국은행이 내달부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예금토큰' 실거래 테스트에 돌입한다. 지난해 1차 실거래 테스트에 이어 이용자와 사용처를 대폭 넓히면서 예금토큰이 실제 결제·송금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집중 검증한다. 시중은행들은 예금토큰을 담는 전자지갑과 모바일뱅킹 서비스 경쟁에 들어가면서 향후 디지털 지급결제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전망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2단계 실거래 테스트에는 기존 7개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기업·부산)에 경남은행, iM뱅크가 합류해 총 9개 은행이 참여한다.
예금토큰은 이용자가 은행에 맡긴 예금을 토큰 형태로 전환해 디지털 지갑에 담아 결제나 송금 등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한은이 발행하는 기관용 CBDC가 은행 간 결제의 중심 인프라 역할을 하고 시중은행이 이를 기반으로 예금토큰을 발행하는 구조다. 기존 계좌 기반 지급결제와 달리 블록체인 기술과 스마트계약 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금융 인프라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된다.
이번 2단계 테스트는 1차보다 규모가 크게 확대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프로젝트 한강 2단계 추진을 위한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하면서 예금토큰 지갑 수를 기존 10만개에서 50만개로 늘리고 사용처를 소상공인과 대형 사업체 등으로 확대한다. 기존 결제 기능에 더해 개인과 법인 간 송금 기능도 추가했다. 생체인증도 지원된다. 지갑별 보유한도와 송금한도 역시 1차 테스트보다 확대된다. 사업자에게는 비대면 전자지갑 개설과 현금영수증 발행 등의 기능도 추가된다.
◇은행권, '앱 안의 지갑' 선점 경쟁
은행권의 당면 과제는 가맹점들이 별도의 단말기 교체나 시스템 수정 없이도 예금토큰 결제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은행들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독자적인 새 결제망을 설치하는 대신 기존 카드사와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 밴(VAN)사의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우회 전략'을 택했다.
1단계 참여 은행들은 2단계 테스트를 위해 서비스 범위를 확대했고 경남은행과 iM뱅크도 새롭게 혁신금융서비스 사업자로 지정됐다.
특히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입장에서는 예금토큰이 단순한 새로운 결제수단을 넘어 고객의 '주거래 금융 플랫폼'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고객의 금융 활동이 계좌와 체크·신용카드, 간편결제 앱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디지털 지갑이 결제와 송금, 자산관리 서비스를 연결하는 새로운 금융 접점으로 부상할 수 있어서다.
국민은행은 대형 PG사인 KG이니시스와 손을 잡았다. 우리은행은 자회사인 우리카드 및 밴사인 한국정보통신(KICC)과 협력 전선을 구축했다. 신한·하나·농협은행 역시 PG사 및 카드사와의 결제 인프라 제휴를 다각도로 추진 중이다.
다만 5대 은행이 각자의 뱅킹 앱을 통합 디지털 지갑으로 전면 개편한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금융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예금토큰 기반 지급·결제 테스트의 이용자와 사용처 확대, 송금 기능 추가, 전자지갑 관련 기능 확대 등이다. 따라서 은행권이 향후 기존 모바일뱅킹 앱과 전자지갑 기능을 어떻게 결합할지는 각 은행의 사업 전략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빅테크와의 '보이지 않는 경쟁' 변수
은행권이 긴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빅테크와 핀테크의 존재다. 카카오페이와 토스 등 간편결제 사업자들은 이미 수천만 명에 달하는 고객 접점을 확보하고 있다. 예금토큰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될 경우 기존 은행의 계좌망과 간편결제 플랫폼 사이의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다만 예금토큰은 현재 은행 예금을 기반으로 발행되는 구조인 만큼, 당장 은행 계좌를 대체하는 새로운 민간화폐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은행 입장에서는 기존 예금 기반을 유지하면서 이를 토큰화해 새로운 지급결제 영역으로 확장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5대 은행이 최근 프로젝트 한강뿐 아니라 국제결제은행(BIS) 등이 주도하는 '프로젝트 아고라'에 참여한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달 진행된 아고라 실거래 테스트에는 한국을 포함한 8개국 중앙은행과 40여개 금융기관이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5대 은행이 모두 참여했다. 테스트에서는 은행·기업 간 거래와 외환 동시 결제 등 17개 시나리오가 검증됐다.
국내 은행들이 글로벌 토큰화 금융 인프라 실험에 잇따라 참여하면서 앞으로는 국내 결제뿐 아니라 국가 간 송금과 외환 거래까지 디지털화폐 기술이 확장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프로젝트 한강 2단계의 성공 여부에 따라 은행권의 디지털 전략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9월을 전후로 예금토큰 실거래가 확대되면서 은행권의 경쟁 구도 역시 '누가 디지털 금융의 고객 접점을 확보하느냐'로 옮겨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금토큰은 단순히 새로운 결제수단 하나가 추가되는 문제가 아니라 은행 예금과 결제, 디지털 자산을 연결하는 인프라를 만드는 작업"이라며 "2단계에서는 기술 구현보다 실제 고객과 가맹점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주형연 기자 jh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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