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 서울시 서울의료원장
흔히 소음을 일시적 불편함으로 여기기 쉽다. 처음에는 시끄럽다가도 익숙해지면 크게 불편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음의 영향은 의외로 광범위하다. 소음은 우리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환경 스트레스로, 그 피해는 귀에서 시작하여 심장, 혈관, 뇌, 정신 건강에 이르기까지 전신에 걸쳐 서서히 나타난다. 따라서 소음을 ‘느린 속도의 살인자’라고도 불린다.
소음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는 청각 기관에 나타난다. 우리 귀 내부 달팽이관에는 수많은 미세한 유모세포(hair cell)가 있어 소리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변환해 뇌에 전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세포는 일단 심하게 손상되면 재생되기 어렵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강한 소음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처음에는 일시적으로 청력이 떨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포의 심한 손상으로 인해 영구적 난청으로 이어진다.
지하철이나 공장 수준인 90dB 이상의 소음에 하루 8시간 이상 노출되면 청력 손상이 시작되며, 전투기 이착륙 수준인 120dB을 넘는 극한 환경에서는 단시간 노출만으로도 통증과 영구 난청이 찾아올 수도 있다.
청신경이 손상되면서 외부 소리가 없는데도 귀에서 ‘삐-’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이명(Tinnitus)도 대표적인 후유증이다. 이명은 청신경이 손상되면서 뇌가 스스로 가짜 신호를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이명은 수면 방해와 집중력 저하로 이어져 삶의 질을 떨군다.
소음의 피해는 귀에만 머물지 않는다. 소음은 몸을 긴장 상태로 전환시켜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급격히 분비되도록 유도한다. 그 결과 고혈압과 맥박이 상승한다. 놀라운 점은 이 반응이 소음을 의식하지 않을 때는 물론 심지어 잠든 동안에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60~70dB 수준의 소음이 계속되면 혈관 수축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면서 고혈압, 동맥경화, 심근경색 등의 위험이 뚜렷하게 높아진다. 세계보건기구는 교통 소음만으로도 유럽에서 매년 수만 명이 심혈관 질환으로 조기 사망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소음이 심장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야간 소음은 더욱 교묘하고 잔인하다. 잠든 동안 소음을 의식하지 못해도 뇌는 반응하여 깊은 수면에서 얕은 수면으로 강제 전환시킨다. 본인은 ‘잘 잔 것 같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충분한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이 반복되면 만성 피로는 물론, 혈당 조절 능력까지 떨어져 당뇨병 위험까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어 있다.
소음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눈에 보이지 않아 더욱 간과되기 쉽다. 지속적인 소음에 노출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며 짜증, 무기력,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층간 소음이나 도로 소음처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소음에 반복해서 노출되면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무기력감이 형성되면서 심리적 고통이 배가된다.
인지 기능 저하 역시 심각하다. 소음은 뇌의 인지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모시키기 때문에 집중력과 기억력을 떨어뜨리며, 성장기 아동에게는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소음이 심한 지역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독해 능력, 기억력, 문제 해결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보고되어 있다. 소음이 심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는 단지 학업 성취가 낮은 것이 아니라, 뇌의 발달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이나 조용한 주택은 30~40dB 수준으로, 이 정도라면 인체는 가장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수면도 방해받지 않는다. 그러나 전화벨이나 시끄러운 사무실 수준인 70~80dB에서는 소화 장애와 혈관 수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결국 소음은 청각에서 시작해 심혈 관계, 수면 장애, 정신 건강 및 아이의 뇌 발달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우리 몸 전체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환경적 원인이다. 소음이 심한 환경에서는 귀마개나 소음 차단 장치를 활용하고, 하루 중 일정 시간은 조용한 환경 속에서 뇌와 귀를 쉴 수 있게 노력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