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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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 판사가 재판에서 피의자에 대해 유죄를 판결했다고 하자. 그런데 나중에 보니 법리를 잘못 적용했거나, 수사가 미진해 무죄임이 밝혀졌다. 이 경우 이 판사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상식으로 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판사 또한 자신이 가진 지식과 양심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의료 현장에선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국민 생명과 밀접한 필수 의료는 회생 불능의 지경으로 망가져 가는 중이다. 밤새 불이 켜져 있어야 할 대형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이 문을 닫고, 소아과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는 ‘오픈런’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생명을 좌우하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의 전공의 지원율은 10% 미만이라는 참담한 바닥을 기록한 지 오래다. 종양내과, 혈액학, 신생아중환자의학 등은 뒤를 이를 의사들이 아예 없다. 수련을 마친 전문의들마저 “더는 버틸 수 없다”며 대학병원을 탈출하거나, 해외로 떠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파동’ 이후 가팔라진 이 국가적 재앙을 두고 정부는 의사 수 부족때문이라는 진단을 되풀이하고, 또다른 쪽에선 의사들의 이기주의를 탓한다. 하지만 생명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들의 손에서 메스를 빼앗고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주범은 따로 있다. 바로 사법부의 경직되고 가혹한 ‘결과론적 판결’이다. ‘정치적 올바름’(PC)이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를 초래했듯 치료 결과를 기준으로 삼은 법원의 판결은 의료 체계를 망가뜨렸다. 선의(善意)가 오히려 지옥으로 가는 길을 연 것이다.

의료 행위는 재판처럼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위험을 내포한다. 특히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은 제한된 시간과 극도로 부족한 정보 속에서 의사가 순간적인 판단으로 생사를 가름하는 극한의 현장이다. 신(神)이 아닌 이상 인간 의사의 진단이 매 순간 완벽할 수는 없으며,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환자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불가항력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언제부턴가 의료 현장의 이런 특수성을 외면한 채, 사후(事後)의 현미경만 들이대며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 의사들을 범죄자로 단죄해왔다.

최근 술에 취해 이송된 뇌경색 환자의 초기 진단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결은 의료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주말과 야간의 응급 환자들 사이에서 밤을 새우며 고군분투하는 전공의들에게, 법원은 “왜 더 완벽하게 알아채지 못했느냐”며 호통을 쳤다. 수년간의 피 말리는 재판 끝에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의사들의 커리어와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의 깊은 상처도 여전하다. 유죄든 무죄든, 일단 의료사고 소송에 휘말리는 순간 전과자 낙인이 찍히고 인생이 파탄 나는 과정을 젊은 의대생과 인턴들은 똑똑히 목격했다.

이런 사법 만능주의가 가져온 결과는 참혹하다.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 “사람 살리려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느니, 법적 위험이 전혀 없는 미용·성형 시장으로 가겠다”는 정서가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로 굳어졌다. 어느 누가 인생을 망칠 것이 뻔한 ‘내외산소’를 하려고 하겠는가. 어렵게 흉부외과나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도 메스를 내려놓은 채 피부 레이저를 잡는 ‘장롱 전문의’가 속출하고, 아이들의 멈춰가는 심장을 열어 수술할 수 있는 소아심장외과 전문의는 전국에 단 27명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원이 정의의 이름으로 내린 가혹한 판결들이, 역설적으로 환자를 살리려던 의사들을 현장에서 쫓아내는 거대한 부메랑이 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 필수 의료 서비스의 수가는 정부가 통제, 외국에 비해 엄청나게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 국가가 지정한 의료기관에서 국가가 정한 가격(수가)으로만 진료해야 하는 ‘당연지정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처럼 가격을 엄격히 규제해 놓았음에도 수술 중 예측하지 못한 사고나 사망이 발생하면 국가가 보호해 주지 않고 의사 개인에게 거액의 민사 배상과 형사 처벌(실형)을 지우고 있다. 우리나라는 “살인범보다 흉부외과 의사가 경찰서를 더 자주 간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올 정도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형사 고소로 이어지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게다가 국민의힘 이소희 의원은 환자가 진료나 수술을 받기 전 담당 의사의 과거 의료사고 형사처벌 이력을 직접 조회·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인의 의료사고 이력 공개제도(의사이력제)’ 법제화를 추진중이다. 이렇게 되면 어느 누가 수술을 하는 의사가 되려 할 것인가? 의료 현장에선 환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필수의료 의사 살생부’가 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이 심해지면, 인프라가 취약한 지방 병원부터 응급실·분만실 문을 닫게 된다. 필수 의료 붕괴는 지역 의료 붕괴와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법 앞의 평등과 환자의 억울함 해소라는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의사의 손발을 묶어 놓고, 국민이 치료받을 기회조차 박탈한다면 그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사법 정의인가. 사법부의 경직된 태도가 계속되는 한, 정부가 아무리 의대 정원을 늘리고 수가를 올려준들 필수 의료는 결코 살아나지 않는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음주 수술이나 환자 바꿔치기 등 고의성이나 명백한 중과실이 아닌 이상, 일반적인 의료과실로 의사를 형사 처벌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 의료 행위의 불확실성을 사법부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한국과 같은 대륙법계 국가로 과실치사상죄가 존재하지만, 검찰 단계에서 의사의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환자 측에 합의금을 지급하는 등의 조건을 걸어 법원 재판으로 넘기지 않고 ‘조건부 기소유예’로 사건을 종결시키는 분위기가 정착돼 있다. 일본은 2006년 전치태반 수술 중 환자가 사망하자 집도 의사를 구속기소한 ‘오노병원 사건’으로 전국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무더기 사직하며 분만 인프라가 붕괴하는 대재앙을 겪었다. 이후 일본은 중과실이 아닌 이상 형사 기소를 자제하고, 의사회가 주도하는 전문 ‘의료사고 조사제도’를 통해 원인을 규명하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해외 사법부와 정부가 처벌에 신중한 이유는 “의사를 감옥에 보내 처벌하는 것보다, 의사가 소송 공포 없이 소신껏 환자를 치료하게 만드는 것이 사회 전체에 훨씬 이롭다”는 사회적 경험과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난 2월 필수 의료 재원 확보를 위한 특별 회계 먀련을 골자로 한 ‘필수의료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정부 또한 필수·중증 의료 분야에 3조원 이상의 재정을 투입, 야간·휴일·취약지 진료 수가를 인상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선의의 의료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을 면제하는 법적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법원 역시 의학적 한계와 응급 현장의 절박함을 인정하는 유연하고 전향적인 사법적 잣대로 전환해야 한다. 사람을 살리려다 범죄자가 되는 사회에서 내 가족의 생명을 구해줄 의사를 기대할 수는 없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로서의 소명의식만으로 버티라고 하기엔 가혹하다. 필수 의료 붕괴라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사법부 역시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엄중히 깨달아야 한다.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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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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