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표 대한변호사협회 신탁변호사회 회장
신탁법 전면개정 15년째 제자리걸음… 국회 계류 법안 조속한 처리 촉구
초고령사회 진입에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등 충돌로 시장 확대 발목
'예방 법학' 자산승계 시장 확대… 변호사 전문성 강화·인식 개선 승부수
"신탁은 단순히 사후에 재산을 배분하는 일회성 유언장이 아닙니다. 건강할 때 자산을 운용하고, 질병이나 치매로 판단력이 흐려질 때 안전하게 지키며, 사후 세대 간 자산 이전까지 전 생애를 책임지는 가장 강력한 법률 도구입니다. 2011년 신탁법이 전면개정된 지 15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를 뒷받침할 후속 입법과 제도 개선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입니다. 국회가 더 늦기 전에 입법 속도를 끌어올려야 합니다."
오영표(사진) 대한변호사협회 신탁변호사회 회장(신영증권 패밀리헤리티지솔루션본부 전무)은 18일 디지털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초고령사회 진입에 맞춘 '신탁제도 대혁신'을 강조했다. 대한변협 신탁변호사회 회장 3연임과 (사)한국재산신탁협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오 회장은 제도적 걸림돌 해소와 함께 법조계 및 대중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사법시험 43회 출신 변호사인 오 회장은 대우증권 법무실, 현대차증권, 푸본현대생명보험 등을 거쳐 현재 신영증권에서 12년째 신탁 비즈니스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법조계와 금융투자업계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신탁 전문가로 꼽힌다.
오 회장은 전통적인 소송 중심에 머물러 있는 법조계가 사전 분쟁 예방을 위한 신탁 및 자산승계 자문 영역으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로펌이 상속설계와 신탁을 주도하며 시장 파이를 키워왔다"며 "사후 분쟁에 매달리는 사후적 소송보다 분쟁 자체를 방지하는 '예방법학' 전문가로서 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대중뿐 아니라 전문가 그룹조차 신탁에 대한 인식이 크게 부족한 현실을 짚었다. 오 회장은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은 영화 '레인맨'의 핵심 소재로 쓰일 만큼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신탁을 일상 제도로 이해하고 있다"며 "반면 국내는 가장 기초적으로 알아야 할 변호사·세무사 등 전문직조차 부동산신탁 외에 가족신탁을 잘 모르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궁극적인 목표는 고등학교 사회교과서에 신탁제도가 실려 누구나 은퇴 시점에 자연스럽게 신탁을 떠올리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제도를 제대로 알아야 상속 분쟁이나 치매머니 횡령을 사전에 예방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행 법·제도가 초고령사회의 현실과 국민들의 승계 수요를 전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탁법 외에 부동산 및 조세 관련 법률들이 신탁제도의 본래 취지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해 일선 현장에서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걸림돌로 꼽히는 것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과의 충돌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 재건축 대상 주택을 유언대용신탁으로 맡길 경우, 법적 소유권 이전을 투기 목적으로 오인해 조합원 지위가 박탈되거나 현금 청산 대상이 되는 치명적인 규제가 대표적이다.
오 회장은 "생전에는 위탁자가 수익자 권리를 그대로 행사하며 자산을 활용하는 순수한 자산승계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도정법상 불명확한 조항 탓에 수탁조차 받지 못하는 왜곡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유언대용신탁 목적의 주택 이전은 조합원 지위를 명확히 유지할 수 있도록 도정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에 계류된 다수의 신탁 관련 법안 처리 지연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가업승계 활성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비롯해 장애인신탁 제도, 고령층 인지 저하에 대응하는 공공신탁 관련 법안 등이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 회장은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치매 머니 횡령을 방지하고 상속 분쟁을 줄이기 위해 신탁을 일상적인 사회적 인프라로 안착시켰다"며 "정치권과 국회가 신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관련 법안을 신속히 통과시켜 국민들이 합법적인 자산 보호 장치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 회장이 이끄는 신영증권 패밀리헤리티지솔루션본부는 대형 증권사 중심의 펀드·상장지수펀드(ETF) 등 단순 금융상품 판매 위주 자산관리(WM) 관행에서 벗어나 초고액 자산가(UHNW) 가문을 위한 맞춤형 '토털 자산승계 솔루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제도적 한계 속에서도 신영증권만의 차별화된 패밀리오피스 경쟁력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 교체나 단기 수익률 압박에 취약한 대형사와 달리, 신영증권은 확고한 오너 경영 체제를 바탕으로 고객 가문과 20~30년에 걸친 초장기 마스터플랜을 구축하고 있다.
상장기업 오너 가문에는 지주형 패밀리오피스 구조를 설계하고, 비상장기업에는 패밀리오피스가 사업회사를 보유하는 방식을 적용해 경영권 안정과 자산 승계를 동시에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신영증권은 변호사, 세무사, 가업승계 전문 회계사, 전담 프라이빗뱅커(PB)로 꾸려진 최소 4인의 전문가 전담팀을 고객 가문 한 곳에 배치하는 밀착형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최근 고액자산가들의 화두로 떠오른 유류분 반환청구 분쟁 대비용 '유보금 신탁'이나 성년후견인의 재산 횡령을 원천 차단하는 '치매신탁', 부모 사후 장애 자녀의 생활·의료비를 안정적으로 지급하는 '장애인특별부양신탁' 등 약 300개에 달하는 정밀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본시장법 개정에 발맞춰 업계 최초로 '보험금청구권신탁'을 출시 거액의 사망보험금을 유족 생애주기에 맞춰 분할 지급하도록 설계하는 등 혁신적 모델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개정 민법에 대응한 '유류분 대응 유동성 패키지'까지 갖추며 시장 표준을 선도하고 있다.
오 회장은 "우리의 장기 목표는 단순히 한 회사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신탁시장의 표준 모델(프로토타입)을 세우는 것"이라며 "사회교과서에 신탁제도가 실릴 만큼 대중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입법 지원을 이끌어 내 초고령사회에 자산보전의 든든한 방파제 역할을 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진우 기자 pjw19786@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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