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소분 94%가 AI 고노출 업종

자동화 비중 높을수록 감소폭 커

한은 "채용보다 경력 형성 지원을"

최근 4년간 청년 일자리 28만5000개가 줄어들면서 감소분의 94%가 인공지능(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경력직 선호와 재택근무 확산으로 약해진 청년층의 '경력 사다리'를 AI 자동화가 더욱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청년층이 일자리 진입뿐 아니라 취업 후 경험과 숙련을 쌓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만큼 단순한 채용 지원을 넘어 기업의 교육·훈련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청년 일자리 감소분 94%가 AI 고노출 업종

한국은행이 18일 발표한 'BOK 이슈노트: 청년고용 위축, AI 탓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청년층(15~29세) 일자리는 28만5000개 감소했다. 이 중 26만8000개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줄어 감소 기여율이 94.0%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3만개 증가했다. 이 중 17만3000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늘어 증가분의 75.2%를 차지했다. AI 확산의 충격이 연령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연공편향적 기술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삼일 한은 고용연구팀장은 브리핑에서 "지난 4년 동안 청년층 일자리 28만5000개가 감소했는데 그중 26만8000개가 AI 고노출업종에서 줄었다"며 "반면 50대는 증가한 일자리의 75%가 고노출업종에 집중되는 연공편향적인 기술변화의 양태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종별로 보면 청년 고용은 정보서비스업에서 31.4% 줄어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출판업은 27.4%, 컴퓨터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은 16.6%, 전문서비스업은 11.6% 감소했다. 출판업에는 소프트웨어 개발·공급업이 포함돼 있고 이들 업종에는 정보통신전문가와 기획·인사·회계 등 사무직 비중이 높다.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도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달랐다. AI에 업무를 맡기는 '자동화' 비중이 높은 업종일수록 청년 고용 감소 폭이 컸다. 반면 근로자가 AI를 보조 도구로 사용하는 '증강' 비중이 높은 업종에서는 뚜렷한 감소 패턴이 나타나지 않았다.

오 팀장은 "앞서 나타난 청년 고용 감소는 자동화에 의한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AI 도입 그 자체보다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실제 고용에 미친 영향이 다르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대졸 청년 실업률 7.0%…취업해도 이탈 늘어

AI에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된 고학력 청년층의 고용 여건도 악화했다. 2022년 11월 이후 대졸 이상 청년층의 평균 실업률은 7.0%로 전문대졸 이하 청년층의 5.4%보다 1.6%포인트(p) 높았다. 2019년 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두 집단의 실업률 격차가 0.2%p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게 벌어진 것이다.

30~59세에서는 이 같은 학력별 실업률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AI 노출도가 높은 업무에 종사할 가능성이 큰 대졸 청년층을 중심으로 고용 충격이 집중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규채용에서 청년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4~2019년 평균 36.9%에서 2024~2026년 29.3%로 7.6%p 하락했다. 청년인구 감소를 고려하더라도 하락 폭이 상당하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청년 고용 감소는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인 데 그치지 않고 기존 청년 근로자의 이탈이 늘어난 영향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AI 고노출 업종에서 일하던 청년이 직장을 잃고 실업자로 이동하는 사례가 최근 증가했다.

오 팀장은 "청년 고용이 나빠진 것은 기업이 새로 뽑지 않아서라고 예상했지만 데이터상으로는 유출도 늘어 양쪽 측면이 모두 고용 감소에 기여했다"며 "청년층이 일자리를 잡더라도 고용관계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커진 현상이 AI 고노출 업종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AI만의 탓 아냐…기존 경력 사다리 약화 가속"

다만 한은은 최근 청년 고용 위축을 AI만의 영향으로 해석하는 데는 선을 그었다. 팬데믹 당시 과잉 채용의 정상화와 기업의 경력직 선호, 내부교육 축소, 재택근무 확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어서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신입직원이 선배로부터 비공식적으로 업무를 배우는 기회가 줄면서 기업이 부담해야 할 훈련·멘토링 비용이 커진 점도 경력직 선호를 강화한 요인으로 꼽혔다. 재택근무 과정에서 표준화·모듈화된 초급 업무가 늘었고 이후 AI가 이를 쉽게 자동화하면서 청년층의 진입 일자리가 더욱 빠르게 줄었다는 것이다.

오 팀장은 "원래부터 경력직 채용 선호와 기존 경력 사다리가 약화되는 모습이 있었고 이를 AI라는 기술이 훨씬 가속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며 "모든 것을 AI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은은 기존 초급 일자리를 그대로 보전하는 정책보다 AI 시대에 맞춰 청년의 경력 사다리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단순한 AI 활용 교육을 넘어 실제 업무와 AI 활용, 숙련자의 지도를 결합하고 채용 인원에 보조금을 주는 방식에서 기업의 훈련·멘토링 비용을 지원하는 '경력형성 지원금'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 팀장은 "값싼 AI 자동화로 주니어 인재 파이프라인을 훼손하면 장기적으로 시니어도 생길 수 없다"며 "단순히 채용인원을 유지하도록 지원하기보다 기업이 근로자를 훈련하고 경력을 형성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유진아 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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