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이시바의 ‘반성·부전의 맹세’ 계승하지 않아
침략·가해·아시아 피해 언급 없이 안보 강화 강조
자민당 핵심 인사·현직 각료들은 야스쿠니 집단 참배
나루히토 일왕은 ‘깊은 반성’ 언급해 대조
한국의 광복절이자 패전일인 15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직접 참배를 피하면서도 과거 일본의 전쟁 책임이나 주변국 피해에 대한 반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도쿄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전쟁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부전의 맹세’를 밝히지 않았다. 일본 총리가 패전일 추도사에서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최근 일본의 보수·우경화 흐름과 맞물려 주목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전쟁의 참화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기존 표현도 일부 바꿨다. 역대 일본 총리들이 사용해온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는 표현 대신 ‘반복시키지 않는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과거 일본 총리들의 추도사에는 일본의 침략과 가해 행위, 아시아 각국이 입은 피해와 고통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이러한 표현을 모두 제외했다.
대신 일본의 국제적 역할과 안보 역량 강화를 강조했다. 그는 “일본은 인도·태평양의 빛나는 등대로 의지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며 “각국이 직면한 과제 해결을 위해 일본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일본, 안전하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국가 안보와 사회 안정에 힘을 쏟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의 추도사는 지난해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의 행보와도 대비됐다. 이시바 전 총리는 당시 일본 총리의 추도사에서 오랫동안 빠졌던 전쟁에 대한 반성과 부전의 맹세를 다시 언급했다. 반면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이어가지 않았다.
나루히토 일왕은 같은 추도식에서 전쟁으로 인한 고난을 되새기면서 ‘깊은 반성’을 언급했다. 총리와 일왕의 메시지가 엇갈린 셈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찾지는 않았다. 대신 오전에 사비로 야스쿠니 신사에 다마구시 공물료를 봉납했다. 총리 자격이 아닌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공물을 올렸으며, 스즈키 슌이치 자민당 간사장이 이를 대신 전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총리 취임 전까지 매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참배해왔다. 이번에는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을 감안해 직접 참배를 피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자민당 주요 인사들의 야스쿠니 참배는 이어졌다. 스즈키 간사장과 아리무라 하루코 총무회장, 니시무라 야스토시 선거대책위원장은 이날 함께 신사를 찾았고, 하기우다 고이치 간사장 대행도 별도로 참배했다.
스즈키 간사장은 참배 후 “나라의 초석이 된 영령에 대한 감사와 애도의 마음을 드리는 것은 당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카이치 자민당 총재의 영령에 대한 평소 생각을 충분히 알고 있기에 그 생각을 받들어 당 집행부를 대표하는 형태로 3명이 참배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각료 가운데서는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과 기카와다 히토시 오키나와·북방대책담당상, 오노다 기미 경제안보담당상, 기우치 미노루 경제재정담당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현직 각료의 패전일 야스쿠니 참배는 7년째 이어졌다. 특히 현직 방위상이 8월 15일 야스쿠니를 찾은 것은 2024년 이후 2년 만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참배 뒤 자신의 엑스(X)에 ‘부전의 맹세’를 언급하는 글을 게시했다.
초당파 국회의원 모임인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들과 자민당 내 보수 성향 의원 모임도 이날 야스쿠니를 방문했다. 참정당 가미야 소헤이 대표와 일본보수당 햐쿠타 나오키 대표 등 우익 성향 정당 지도부도 참배에 동참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근대 전쟁과 내전 등에서 숨진 246만여 명을 추도하는 시설이다. 태평양전쟁을 이끈 도조 히데키 전 총리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어 한국과 중국 등에서는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시설로 인식되고 있다.
박양수 기자(yspark@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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