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주] 주식시장 관련 소식이 매일 쏟아지지만 뉴스에서 ‘개미’의 목소리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기사를 쓰는 기자도 개인 투자자고, 매일 손실과 이익 사이에서 울고 웃습니다. 일반 투자자보다 많은 현장을 가고 사람을 만나지만 미처 전하지 못했던 바를 철저하게 ‘개인’의 시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정부 발표 믿고 계좌 깼다가 비과세 혜택만 날렸습니다. 며칠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바꿀 거면 세금 22% 떼여도 속 편한 미국 직투로 떠나는 게 맞지 않나요.”
사회초년생인 20대 후반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중도 해지했다가 깊은 허탈감에 빠졌다. 취업 직후 ISA에 가입해 국내 상장 미국 지수 ETF를 매달 적립식으로 모아가며 3년 만기를 코앞에 두고 있던 김씨는 정부의 기습적인 개편안 소식을 듣고 고심 끝에 계좌를 깼다.
내년부터 만기 제한이 생기기 전에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미리 해지해 무기한으로 재가입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며칠 뒤 여론이 악화하자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개편안이 전면 재검토되면서 김씨는 그동안 쌓아온 비과세 혜택과 손익통산 권리만 허공에 날린 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서민과 청년의 목돈 마련을 돕겠다며 도입된 ‘국민 통장’ ISA가 정부의 설익은 세제 개편과 즉흥적인 정책 번복으로 일대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재정당국이 발표한 개정안은 3년 의무가입기간 후 무제한 연장되던 일반 ISA의 만기를 최장 5년(3년+2년)으로 제한하고, 연간 2000만원의 납입한도 이월마저 전면 폐지해 당해 연도 미납분을 소멸시키도록 설계됐다.
당국이 초장기 만기를 설정해 둔 기존 가입자는 5년 제한에서 제외한다는 소급 예외를 두자, 증권사 창구에는 5년 족쇄에 묶이기 전 해지 후 만기를 900개월(75년)로 적어 넣는 기형적인 계좌가 쏟아져 나오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정부 정책을 믿고 선제적으로 대응했던 청년 투자자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았다는 점이다. 5년 제한이라는 족쇄를 피하고자 손실을 감수하고 3년 의무가입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기존 계좌를 깼던 이들은 일반형 최대 200만원, 서민형 최대 400만원의 비과세 혜택을 그대로 날렸다.
일반 계좌에서 국내 상장 해외 ETF에 투자할 때 부과되는 15.4%의 배당소득세 감면과 손익통산, 초과분에 대한 9.9% 분리과세 혜택까지 전부 허공으로 사라졌다. 정책 실패에 따른 손실을 오롯이 개미들이 지불했지만, 당국 어디에서도 이들에 대한 구제책이나 책임 있는 사과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사태가 청년층의 ‘국장 탈출’을 정면으로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ISA 편입 자산 중 해외 ETF 비중은 26.5%에 달할 정도로 청년층의 활용도가 높다. 국내 증시의 부진한 수익률 속에서도 절세 혜택 하나를 믿고 국내 증권사를 통해 해외 지수를 모아가던 청년들에게, 세제 혜택 축소와 정책 번복은 “언제든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불신만 심어줬다.
매년 250만원 기본공제와 투명한 주주환원, 예측 가능한 세제를 갖춘 미국 시장에 비해 손바닥 뒤집듯 오락가락하는 국장의 세제 리스크를 굳이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청년들에게 장기 투자를 하라면서 정작 제도 설계의 일관성은 며칠도 유지하지 못하는 시장에서 어떤 개미가 미래를 맡기겠는가. 국내 시장에 돈을 묶어두겠다며 내놓는 섣부른 규제와 즉흥적인 번복이 오히려 청년들을 태평양 건너 미국장으로 등 떠밀고 있는 서글픈 현실을 정부는 뼈아프게 직시해야 한다.
박진우 기자(pjw19786@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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