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어린 시절 삼촌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가족에게 알린 뒤, 이에 격분해 집으로 찾아온 삼촌에게 폭행당하자 흉기를 들어 맞선 조카의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특수협박 혐의로 기소된 A씨(39)의 유죄 판결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사건은 2023년 1월 A씨가 가족들에게 삼촌 B씨(76)로부터 어린 시절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B씨가 격분해 A씨의 집을 찾아가 주먹을 휘두르는 등 폭행하자, A씨는 흉기를 들어 B씨를 위협했다.

검찰은 A씨를 특수협박 혐의로, B씨를 상해 혐의로 각각 재판에 넘겼다. 1심은 A씨에게 벌금 300만원, B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항소심에서 자신의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B씨가 행사한 유형력의 정도가 A씨의 행동 자유를 억압할 정도는 아니었다”며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2심은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에 다소 참작할 부분이 있다”며 A씨의 양형부당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벌금 300만원의 선고를 1년간 유예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씨의 행위를 형법상 ‘정당행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형법 제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A씨의 행위는 예고 없이 집에 찾아와 폭력을 행사하고 흉기로 협박하는 B씨의 계속되는 부당한 공격에 맞서 수동적·소극적 차원에서 행한 행위”라며 “목적의 정당성,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긴급성, 보충성 등 정당행위의 요건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법원은 두 사람이 다투게 된 발단과 경위를 고려할 때 B씨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봤다. 대법원은 “B씨의 책임이 근원적이고 보다 중하다고 보인다”며 “B씨의 폭행과 위협에 대항해 한 A씨의 행위는 그 정도가 상대적으로 훨씬 가볍고 피해의 정도도 A씨가 더 중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B씨가 A씨의 집에 일방적으로 찾아와 갑작스럽게 폭력을 행사한 점에 주목했다. 이 과정에서 A씨가 상당한 놀라움과 위협을 느꼈을 것으로 봤다. 또한 싸움이 잠시 중단된 뒤에도 B씨가 서랍을 던지는 등 폭력을 이어갔고, A씨는 제대로 저항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B씨의 폭력성, 두 사람의 과거부터의 관계, 성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볼 때 A씨의 행위는 감정적으로 격앙되고 두려운 나머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공포심에서 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언동을 하는 B씨의 추가적인 가해행위를 저지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가정 내 상호 폭력 상황에서 애초 피해자였던 사람이 방어적으로 흉기를 든 경우, 그 순간의 행위만을 떼어 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행위에 이르게 된 구체적인 상황과 다툼의 경위, 당사자 사이의 역학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당행위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성 기자(kdsu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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