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회의’ 터키 입·출국 전용기 바꿔탄 트럼프
구형 에어포스원 탑승 출국 연출, 직후 빠져나가
전용기내 기자들엔 이륙 전 ‘창문 가리개 내려라’
기내식운반 컨테이너 트럭 활용…대체 수송기로
귀국 경유 英공군기지서도 에어포스원 下船연출
카타르 선물한 신형 에어포스원 갈아타 워싱턴行
컨테이너 비밀작전 한달여 만에 WP서 폭로 보도
나토 기간 이란 격돌…강경파 암살·현상금 공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7~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마친 뒤 출국할 때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를 이용한 것처럼 ‘위장 탑승’ 작전을 펼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이란 또는 대리세력의 암살 시도를 우려한 조치라고 한다.
10일(미 동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8일 귀국하기 위해 앙카라 공항에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구형 에어포스원 점보 제트기에 올랐지만, 실제론 규모가 더 작은 공군 C-32A 수송기로 몰래 옮겨 탄 채 영국 밀든홀 공군기지로 향한 것으로 파악됐다. 보도 전까지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전용기에 동승한 줄로 알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WP는 신문이 입수한 자료, 작전에 정통한 미 행정부 관계자 1명, 대통령의 이동에 대해 잘 아는 인물 1명을 인용 근거로 삼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카타르에서 제공한 최신형 보잉 747-8 전용기를 타고 나토 정상회의에 도착했으며, 출국 전엔 구형 에어포스원을 이용해 귀국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입·출국 과정에 전용기를 한차례 갈아 탄 것만으로도 이란발(發) 암살을 우려한 조치인지 관심을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은 출국 당시 TV 생중계 속에서 구형 에어포스원 제트기에 탑승했고, 몇분 뒤 탑승구 반대편에 있던 공항 케이터링(기내식 등 운반용) 트럭 컨테이너에 올라탔다. 트럭의 유압장치로 컨테이너를 내려 하선한 트럼프 대통령은 근처 대기 중이던 C-32A로 곧장 옮겨탔다. 미 고위관료 수송에 쓰이는 C-32A는 보잉 757을 개조한 기종으로, 대통령이나 부통령도 탑승할 수 있다.
이같은 작전이 이뤄질 동안, 에어포스원에 탑승했던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이륙 전 ‘창문 덮개를 내리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미군은 대통령을 태운 모든 항공기를 “에어포스원”으로 호출하는데, 비행 중 트럼프 대통령이 탄 수송기에 대해 “Reach 18”(리치 18), “RCH18” 등 일반 호출명을 썼다.
대통령이 탑승하지 않은 구형 전용기에 대해선 에어포스원을 상징하는 “AF1”으로 호출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영국 밀든홀 기지엔 현지시간 8일 오후 10시 20분쯤 C-32A가 착륙했다. 9분 뒤 구형 전용기가 착륙했고, 오후 10시 56분 트럼프 대통령은 이 기체 탑승구 계단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노출했다.
착륙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C-32A에서 구형 전용기로 옮겨 탄 과정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밀든홀 기지 방문을 짧게 소화한 뒤, 신형 전용기로 바꿔 탑승해 미국 워싱턴까지 남은 구간을 비행했다. 그는 기내에서 약 15분간 기자들과 약식 문답을 하며 이란의 암살 위협을 강조했다.
‘기만 작전’에 관해선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취재진 일부는 앙카라 공항에서 ‘기내 창문 덮개를 내리라’는 지시가 내려진 이유를 물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측의 테러 가능성을 상정해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그 더러운 인간들 때문에 위험한 비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이란이 에어포스원에 대해 신빙성 있는 위협을 제기했는지’ 불신이 섞인 듯한 질문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글쎄, 나는 항상 위협받고 있다. 나는 당신들보다 먼저 그들 명단에서 1순위”라며 “하지만 내가 가면(공격 받아 죽게 되면), 당신들도 간다(죽는다)”고 어두운 농담으로 받아 넘겼다.
백악관은 보도된 작전 내용을 언론에 확인시켜주지 않고 있으며, 비밀경호국도 논평을 거부했다. 스티븐 청 백악관 공보국장은 “대통령이 최근 말했듯이, 미국에는 그를 겨냥하고 있는 많은 적들이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수단을 사용한다”고 원론적 성명을 냈다.
WP를 인용한 AP통신은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CBS 뉴스가 지난달 정보 당국자들이 잠재적인 대통령·전용기 공격 우려를 제기함에 따라 추가적인 예방조치가 취해졌고, 대통령의 앙카라 귀국 여정 첫 구간에서 카타르가 제공한 신형 전용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신형 기체의 보안 의혹도 제기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새 전용기가 추가 개량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CNN에 따르면 미국 민주당의 리처드 블루멘솔 상원의원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위장 탑승 작전을 두고 “전례가 없고 초현실적”, “완전히 무서운 일”이라고 비난하며 의회 차원의 조사를 촉구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회의 참석차 튀르키예에 체류할 동안,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은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 내에서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최고지도자 친위 군사조직)가 상선 공격을 감행한 데 따른 군사시설 보복공습을 벌였다. IRGC도 재보복에 나서 긴장이 고조된 상태였다.
지난달 7일(현지시간) 이란 강경파 모즈타바 자레이 국회의원은 X 계정을 통해,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 장례 기간 트럼프 대통령을 나토 회의에 초청했단 이유로 “에르도안(튀르키예 대통령)에게 죽음을!”이라며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또 “내가 용감하고 명예로운 튀르키예 시민이었다면 앙카라 거리에서 ‘순교 작전’을 통해 그 살인자를 지옥으로 보내버렸을 텐데”라고 테러 기원 언급을 했다.
최고지도자가 편집장을 임명하는 강경파 일간지 카이한은 지난달 8일 이란이 알리 하메네이 암살 복수를 선언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체는 트럼프 살해 현상금이 1억달러 이상 모금됐다며, 대미 종전 협상을 “수치스러운 일”로 비난하기도 했다.
한기호 기자(hkh89@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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