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주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ICT·모빌리티연구부 책임연구원

대한민국 지도에는 우리가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영토가 있다. 바로 우리 발밑의 깊은 바다다. 국가의 진정한 ‘영토’란 단순히 지도상에 그어진 선이 아니라, 자국의 물리적 힘을 투사하고 실질적인 상호작용과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은 우주, 항공, 육상, 해상 부문에서는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실질적인 대응력을 갖추며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수중 세상에 대해서는 거의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우리나라 관할 해역만 보더라도 동해 울릉도 북쪽에는 최대 수심 2985m에 달하는 깊고 거대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바다의 밑바닥에 우리 힘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

혹자는 굳이 사람이 타는 유인잠수정을 만들 필요 없이, 무인 장비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냐고 묻는다. 하지만 무인과 유인의 역량 차이는 스포츠 경기를 안방에서 TV 중계로 관람하는 것과,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숨소리와 현장의 박진감을 직접 체감하는 것만큼이나 현격하다.

단적인 예로,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심해에 대한 오랜 열정으로 2012년 잠수정에 직접 탑승해 지구상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의 해저에 도달했고, 그 생생한 심해 경험은 ‘아바타: 물의 길’ 등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이 녹아들어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에게 심해 탐험은 단순한 도전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여는 원천이었던 셈이다.

수중 대응력의 부재는 주변국들의 행보와 비교할 때 더욱 뼈아프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모두 수심 6000m 이상을 탐사할 수 있는 심해 유인잠수정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보유하고 있다. 주변 해양 강대국들이 유인잠수정을 통해 앞다투어 바닷속 패권을 은밀히 다투는 반면, 삼면이 바다로 열려 있는 우리는 심해는커녕 연안의 얕은 바다인 천해조차 자유롭게 누빌 유인잠수정이 단 한 척도 없다.

주변 강대국들이 심해 6000m 이상의 공간에서 열수광상의 희귀 생태계 발견, 희귀 광물 선점과 군사 안보적 지배력을 다투는 동안, 우리는 연안의 수중 탐사조차 대부분 수입 장비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 종속을 탈피하기 위해 최근 국가적 차원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해양수산부, 경상북도, 포항시가 총 325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국내 최초로 최대 잠항수심 300m급 3인승 소형 유인잠수정을 개발하는 ‘천해용 수중 모빌리티 기술 개발 사업’에 본격 착수한 것이다.

오는 2030년 실해역 입수를 목표로 극한 수압을 견디는 ‘압력선체’를 국제 인증 수준 이상으로 설계 중이며, 비상상황 시 탑승 공간 전체가 수면으로 사출되는 세계 최초의 ‘사출형 비상탈출 시스템’을 탑재해 고난도 안전 기술을 자립화할 예정이다.

KIOST는 이번 사업을 통해 2030년까지 소형 유인잠수정의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2031~2035년에는 심해 6500m급 유인잠수정을, 나아가 2036~2040년에는 지구상 가장 깊은 곳인 마리아나 해구를 탐사할 수 있는 1만1000m급 초심해 유인잠수정을 단계적으로 개발해 나갈 예정이다.

이 거대한 로드맵이 완성될 때, 우리는 비로소 무한한 자원의 보고인 바다에서 미래 신성장 동력을 우리 손으로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해양 강국은 수면 위로 군함을 띄우는 평면적인 힘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가장 깊고 어두운 해저 바닥까지 우리의 기술과 의지대로 정밀하게 탐사하고 실시간으로 통제할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의 입체적인 수중 주권과 기술 독립이 온전히 확립된다.

국가 주도로 추진되는 이번 300m급 유인잠수정 개발 사업은 잊고 있었던 수중 영토를 되찾기 위한 위대한 여정의 시작이다. 한반도 주변 바다를 넘어 세계 대양을 우리의 무대로 만들기 위해, 정부의 과감하고 일관된 예산 투자와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