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화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매년 수십 개의 코인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상장 폐지'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거래지원 종료 공지가 뜰 때마다 해당 코인의 가격은 종잇조각 수준으로 폭락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거래소는 시장 정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상장 폐지를 단행하지만, 정작 코인을 상장시켜 수수료 재미를 본 거래소와 사기성 코인을 찍어낸 발행사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기형적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5월까지 원화 가상자산거래소의 거래지원이 종료된 코인은 무려 394개에 달했다.
가상자산 시장이 이처럼 '먹튀'의 온상이 된 것은 제도의 빈 틈을 악용한 발행사와 이를 방치하는 거래소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때문이다. 발행사들은 국내의 발행 규제를 피해 싱가포르나 스위스 등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를 차려놓고 코인을 만든다. 마케팅과 상장은 한국에서 진행해 서민들의 쌈짓돈을 쓸어 담으면서도, 정작 유통량을 조작하거나 무단 덤핑을 해 적발되면 "해외 법인이라 국내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며 발을 뺀다. 과거 유통량 불일치로 시장을 뒤흔들었던 '위믹스'나, 사기적 미술품 조각투자 부정거래 혐의로 경영진이 구속된 '피카코인' 사태 등은 모두 이같은 감시 사각지대에서 싹텄다. 기술력과 로드맵을 검증하겠다던 거래소의 상장심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반증한다.
더 큰 문제는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무책임한 태도다. 거래소들은 상장 폐지 결정을 내릴 때마다 투자자 보호를 핑계로 대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애초에 부실한 코인을 걸러내지 못하고 상장시켜 거래 수수료를 챙긴 건 거래소다. 문제가 터지면 투자자 유의종목으로 지정하고 한 달 남짓의 출금 기간을 주는 것으로 면죄부를 받으려 한다.
이같은 혼란의 근본 원인은 정부와 국회의 직무유기에 있다. 2024년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됐지만, 이는 시세조종을 막는 반쪽짜리 법에 불과하다. 코인의 발행 자격을 제한하고 허위 공시를 분식회계 수준으로 처벌하는 핵심 '2단계 입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나 대주주 지분 제한 등의 이해관계에 가로막혀 현재까지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표류 중이다. 금융당국이 행정 지도나 거래소 자율 규제라는 임시방편으로 메우는 사이, 악성 발행사들은 법망을 비웃으며 투자자들의 피 같은 돈을 가로채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2단계 입법 논의를 서둘러 시장의 법적 공백을 당장 메워야 한다. 거래소 역시 상장 폐지로 인한 투자자 피해를 분담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온체인 모니터링을 실시간화하는 등 공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사설 거래소들이 국가 공인 거래소 행세를 하며 이익은 독식하고 리스크는 국민에게 떠넘기는 불법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