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추진하던 ‘외국인 농촌 토지 소유 규제 완화’ 구상이 상원의 반대로 좌절되면서 심각한 정치적 후폭풍에 직면했다. 밀레이 정부가 내세운 시장 자유화 개혁의 한계가 표면화된 첫 사례라는 지적이다.
9일(현지시간) 클라린, 라나시온, 페르필, 파히나12 등 아르헨티나 주요 언론들은 밀레이 정부의 주간 국정 동향을 조명하며, 외국인 토지 소유 규제 완화를 둘러싼 상원의 표결 결과를 이번 주 최대의 정치적 악재로 꼽았다.
앞서 7일 상원은 정부가 발의한 ‘사유재산 불가침 법’을 찬성 37표, 반대 33표로 가결했으나, 이 과정에서 핵심 조항이었던 외국인의 농촌 토지 매입 제한 폐지안을 삭제한 뒤 하원으로 넘겼다.
핵심 국정 과제가 의회 상원의 벽을 넘지 못하면서, 밀레이 대통령 특유의 강력한 밀어붙이기식 개혁 정책이 정치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밀레이 정부는 2011년 제정된 농촌토지법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외자 유치 물꼬를 틀 계획이었다. 현행 법안은 외국인이 소유할 수 있는 농촌 토지 비율을 국가 전체 및 각 지자체별로 최대 15%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페데리코 스투르세네거 규제·국가개혁장관은 규제가 철폐될 경우 약 150억달러(약 21조2000억 원) 규모의 외국인 투자가 유입될 것이라며 법안 통과를 강하게 밀어붙여 왔다.
하지만 국민적 거부감은 거셌다. 여론조사기관 수반 코르도바가 7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가 외국인 토지 매입 제한 유지를 지지했으며, 찬성은 16.7%에 불과했다.
이 같은 반대 여론은 대규모 대중 시위로 이어졌다. 상원 표결을 전후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의회 앞에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수천명의 시민이 모여 “조국은 매각 대상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쳤고, 이 과정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반대 진영은 토지가 단순한 자산을 넘어 국가 수자원·산림·광물 등 핵심 자원 및 국경 안보와 직결된 ‘주권의 문제’라고 맞섰다. 결국 상원 문턱에서 해당 조항을 삭제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다만 현지 언론들은 이번 조항 삭제가 정책의 완전한 폐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분석한다. 밀레이 정부가 향후 별도 법안이나 수정안을 통해 규제 완화를 재추진할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번 아르헨티나 상원의 결정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격화되고 있는 ‘자원 안보’ 및 ‘자원 민족주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칠레의 리튬 국가 통제 강화, 인도의 식량 안보를 위한 곡물 수출 제한 등 남미와 신흥국을 중심으로 식량·광물·토지를 단순한 시장 자산이 아닌 ‘국가 전략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대두하고 있다. 이번 상원 표결과 시민들의 반발 역시 식량 생산의 기반이자 광물·수자원을 품은 농촌 토지를 외국 자본에 개방할 경우 국가 자원 주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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