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방어로 일본의 美국채 매도 위험 차단
장기채 발행 축소 시사하며 공급 부담 완화
베선트, 워시 의장 옹호 시장 달래기 나서
“효과 제한적” 지적에도 금리 방어 의지 분명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재무부가 금리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시장에 잇따라 신호를 보내고 있다.
외환시장 개입부터 장기 국채 발행량 조절 가능성 시사,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의 정책 공조에 이르기까지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해 국채시장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모습이다.
블룸버그통신은 9일(현지시간) 월가 트레이더와 시장전략가들 사이에서 최근 재무부의 일련의 움직임을 두고 “미 장기 국채금리 상승을 막으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이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장 주목받는 대목은 최근 미국과 일본의 외환시장 공동 개입이다. 미일 외환당국은 지난달 31일 이후 엔화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달러를 매도하고 엔화를 매수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했다. 통상 엔화 방어를 위한 일본의 달러 매도는 일본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매각해 달러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블룸버그는 이번 공동 개입을 일본이 자국 통화 방어에 필요한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 국채를 대규모로 매도할 위험을 줄이려는 조치로 해석했다.
특히 베선트 장관은 일본이 미국 국채를 직접 팔지 않고도 시장 개입에 필요한 달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연준의 ‘해외·국제통화당국(FIMA) 환매조건부채권(Repo) 기구’ 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본의 미국 국채 매도 가능성을 낮추는 동시에 미국 국채시장에 추가적인 공급 충격이 발생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재무부가 장기 국채 발행을 줄일 수 있다는 신호를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재무부는 최근 분기 국채 발행계획 보고서에서 향후 발행과 관련해 기존의 ‘향후 잠재적인 증가’라는 표현 대신 ‘향후 잠재적인 변화’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블룸버그는 채권 투자자들이 이를 장기 국채 발행 규모를 축소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국채는 발행량이 늘어날수록 시장에 공급되는 물량이 증가해 가격 하락과 금리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발행량을 줄이면 공급 부담이 완화돼 금리 상승세를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국 장기금리의 상승세는 이미 심각 단계에 접어들었다. 미국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주요 기준이 되는 30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지난달 31일 5.28%까지 치솟으며 2007년 7월 이후 약 1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장기금리가 더 오를 경우 기업과 가계의 차입 비용이 높아지고 금융시장 전반의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정치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국채금리 상승이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기업 자금조달 비용을 끌어올릴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선트 장관이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을 공개적으로 두둔하고 나선 것도 시장을 안정시키려는 움직임 가운데 하나로 분석된다.
워시 의장은 지난달 2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원칙을 강조했지만, 구체적인 정책 방향이나 행동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이를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신호로 받아들이면서 장기 국채금리가 급등했다.
그러자 베선트 장관은 지난 5일 CNBC에 출연해 시장이 연준의 통화정책 관련 발언에서 일종의 ‘해독’(detox)이 필요하다며 워시 의장을 공개적으로 지원했다. 연준의 발언 하나하나에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하면서 금리가 급등하는 상황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재무부의 이런 노력만으로 장기금리 상승세를 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외환시장 개입이나 국채 발행 조정이 미국 국채시장 전체의 수급과 재정 부담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피터 부크바 원포인트 BFG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 재무부의 움직임에 대해 “장기금리 상승으로 미국 국채시장의 취약성이 극에 달해 해외 보유자들에게 매도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상황에 이른 것 같다”고 평가했다.
UBS의 피비 화이트 미국 금리전략 책임자 역시 최근 재무부 조치의 시장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재무부의 행보가 중요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재무부가 장기 국채금리의 추가 상승을 막을 수 있다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의지가 있다는 점을 시장에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재무부의 움직임은 단순한 금리 관리 차원을 넘어선다.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확대라는 구조적 부담 속에서 장기금리 급등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나아가 중간선거까지 흔들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시장의 불안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시장이 이러한 ‘금리 방어 신호’를 얼마나 신뢰할지는 결국 재무부가 실제로 어느 수준까지 행동에 나설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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