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진 세일즈포스코리아 대표
최근 기업의 최고인사책임자(CHRO)들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듣는 고민이 있다. AI 시대에 맞춰 조직과 직무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데이터 취합과 보고서 초안 작성 등 반복적 업무를 AI가 빠르게 처리하면서 기업의 생산성은 높아지고 있다. 반면, 기존의 채용과 육성, 평가 체계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주어진 목표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여러 단계의 업무를 스스로 수행하는 ‘에이전틱 AI’가 확산되면서 이런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AI가 단순한 업무 도구를 넘어 사람과 함께 업무를 수행하는 주체로 발전한 만큼, CHRO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람과 AI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는 ‘에이전틱 조직 설계자’가 돼야 한다. 어떤 업무를 AI에 맡기고, 사람에겐 어떤 판단과 책임을 부여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 핵심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올해 전국 임금근로자 약 3000명을 조사한 결과, 56%가 생성형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었으며 근무시간 절감 효과는 평균 17.6%로 나타났다. 하지만 업무 목적에 맞게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고도 활용자는 13.6%에 불과했다. 기술 도입보다 구성원이 실제 업무에서 AI를 제대로 활용하도록 역량과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기업 현장에서 확인한 점도 같다. 가령 AI를 도입했으니 알아서 활용하라는 방식으로는 혁신을 만들기 어렵다. 안전한 활용 환경과 명확한 원칙, 직무별 학습 체계가 필요하다. 세일즈포스도 전사적인 AI 교육을 통해 50만 시간 이상의 업무시간을 절감했으며, 적극 활용자의 87%는 이전보다 더 어렵고 흥미로운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답했다.
그러나 구성원의 활용 역량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를 통한 시간 절감이 사람의 역할 확장으로 이어지려면 업무 구조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CHRO는 먼저 직무를 사람 단위가 아닌 과업 단위로 살펴봐야 한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는 AI에 맡기고, 분석과 기획은 사람과 AI가 함께 수행하며, 고객과 조직에 영향을 미치는 판단은 사람이 책임지도록 역할 구분이 필요하다. 자동화 이후 사람에게 어떤 역할과 책임을 부여할 것인지도 설계해야 한다.
데이터 활용 역량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지표를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데이터를 비즈니스 성과와 후속 행동으로 연결하는 ‘에이전틱 분석’ 역량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AI가 인사이트를 발견하고 다음 행동까지 제안하는 환경에서는 분석 속도 못지않게 데이터의 정확성과 맥락, 책임 있는 활용이 중요하다.
의사결정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데이터 거버넌스의 무게는 오히려 커진다. AI가 활용하는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는지, 분석 결과에 오류나 편향은 없는지, 기업의 가치와 고객에 대한 약속에 부합하는지를 사람이 검증해야 한다. AI가 만든 결과에 일의 ‘격’(格)을 더하는 것은 결국 이를 해석하고 책임지는 인간의 판단이다.
신입 인재의 성장 경로 역시 기존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AI가 기초 업무를 상당 부분 수행하는 만큼, 입사 초기부터 실제 사업 과제와 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하며 업무의 목적과 판단 기준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주니어는 시니어에게 최신 AI 활용법을 공유하고, 시니어는 비즈니스 맥락과 윤리적 판단 기준을 전수하는 리버스 멘토링도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런 변화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지는 데이터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AI 교육 참여율이나 도구 사용량뿐 아니라 반복 업무 시간, 고부가가치 업무 비중, 업무 정확도와 구성원 역량의 변화를 함께 살펴야 한다. AI로 인한 조직의 변화를 측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제도를 지속적으로 조정하는 것까지가 앞으로 CHRO가 맡아야 할 역할이다.
결국 에이전틱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의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기준으로 AI를 활용하고 사람의 역할과 책임을 어디까지 끌어올리느냐에 따라 기업의 격차가 달라진다. CHRO와 경영진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직무와 성장 경로를 다시 정의하고, AI를 올바른 방향으로 지휘할 ‘격이 다른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기술이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면, 이를 조직의 성과로 완성하는 것은 사람과 조직을 설계하는 리더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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