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준호 부국장 겸 IT과학바이오부장
하킴 제프리스 미국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3일(현지시간) 미 의회에서 “2520만명의 35세 이하 미국 성인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내 18~34세 청년층의 약 33%에 해당하는 2520만명이 너무 비싼 주거비용 때문에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건데,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넘는 역대 최고 기록이다. 제프리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주거비용이 급등해 상당수 청년들이 성인이 돼도 부모에게 얹혀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에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 집을 벗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부모와 함께 사는 성인 자녀들은 그 사실을 부끄러워 한다. 이런 문화에서 35세 미만 성인 3명 중 1명이 부모에게 주거를 의탁하게 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주택정책 실패 때문이라는 게 제프리스의 주장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비슷한 자료를 냈다. 가계경제·의사결정 조사 결과 지난해 30세 미만 성인의 49%가 부모와 함께 산다고 답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2019년보다 12%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대 청년이 부모 집에서 사는 것은 독립에 실패했다는 의미이자, 부끄러운 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고 진단했다.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전통적 가족 문화와 인식이 바뀌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는 부모 집에 사는 미국 성인 자녀들이 스스로를 ‘집에 머무는 딸’(stay-at-home daughter)이나 ‘집에 머무는 아들’(stay-at-home son)이란 신조어로 소셜미디어(SNS)에 소개하고 있다.
미국 청년이 이렇게 된 것은 월세, 학자금대출 상환 부담, 생활물가 상승 때문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터닷컴 자료에 따르면 부모 집에 사는 25~34세 중 70%는 취업을 한 상태다.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라 나가는 돈이 더 많아 부모 집을 못 떠난다는 뜻이다. 이러다 보니 현재 미국에선 ‘어포더빌리티’(생활비 감당 능력)가 최대 정치 화두가 됐다. 요즘 부쩍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민주사회주의자들은 하나같이 어포더빌리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제 한국 얘기를 해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대 청년의 부모 동거율은 81%로 압도적인 OECD 1위다. 19세~34세로 넓혀도 전체의 54.4%(국무조정실 ‘청년 삶 실태조사’ 결과)가 부모와 함께 산다.
한국보다 집값이 비싼 홍콩에는 결혼 후에도 부부가 각자 부모의 집에서 사는 ‘신혼 별거 부부’가 있다고 한다. 신혼집 마련이 불가능해 부부의 연은 맺되, 잠은 각자 부모집에 가서 자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6월 관훈토론회에서 “닥치고 공급”이란 말을 했는데 이제부터는 어떤 집부터 닥치고 지어야 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4인 가족이 살 수 있는 국평 규모 아파트 단지를 그럴듯한 입지에 대규모로 짓는 것은 매우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닥치고 먼저 공급해야 할 것은 미혼 청년들과 신혼부부를 위한 집이다.
단, 청년주택은 집세가 ‘어포더블’해야 한다. 또한 청년들은 서울·수도권 출퇴근이 가능하고, 지하철역과 가까운 곳을 원하니 이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 대신 주차장이나 편의시설, 집 근처 초등학교가 없어도 괜찮고 꼭 대단지가 아니어도 좋다고 하는 청년들이 많으니 시내 곳곳 다양한 자투리 땅이나 건물을 청년주택 부지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도심 내 국유지와 공공부지 등을 활용해 공공·매입 임대주택을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정부의 청년주택 정책은 방향성이 옳다. 닥치고 지어야 할 집의 최우선 순위로 삼아야 한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폐 버스를 개조해 청년들의 임시 주거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 지난 주말 내내 전국이 시끄러웠다. 청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버스 하우스 아이디어에 다시 한 번 좌절하고 상처받았다. 청년 주거 해결이 시급하다. 그래야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독립한다.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홍콩의 신혼 별거 부부가 한국에서도 곧 나타날지 모른다.
부국장 겸 IT과학바이오부장 next@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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