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기상예보 대박 친 스타트업, 정확도 높여
수집한 데이터 분석이 '슈퍼컴퓨터 예보' 능가
기상이변 시대, 물리모델만으로는 예보에 한계
금융·에너지 등 전 산업으로 '예보 산업' 확장
지구 북반구를 덮친 폭염이 세계 곳곳에서 인명 피해와 대형 산불, 전력난을 초래하면서 정확한 기상예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국내도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기록적인 폭염이 장기간 이어지며 온열질환자와 가축 폐사, 농작물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극단적 기상현상이 일상화되는 가운데 "누가 더 정확하게 날씨를 예측하느냐"가 국민 안전은 물론 에너지와 금융시장까지 좌우하는 상황이 됐다.
수십 년 동안 날씨 예측은 막대한 연산 능력을 갖춘 슈퍼컴퓨터가 물리 법칙을 계산하는 수치예보모델(NWP)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 방대한 기상 데이터를 학습해 기존 예보를 뛰어넘는 정확도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기상예측 분야에서도 'AI 대 슈퍼컴퓨터'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 IT매체 테크크런치는 5일(현지시간) AI 기반 기상예측 스타트업 윈드본 시스템즈(WindBorne Systems)를 소개하며 기상산업의 판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AI가 예보 정확도를 높이는 수준을 넘어 금융과 에너지, 농업, 물류 등 다양한 산업에 판매되는 고부가가치 데이터 사업으로 기상정보의 가치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스탠퍼드대 학생들이 창업한 윈드본은 처음에는 기존 기상풍선보다 오래 비행하는 차세대 기상풍선을 개발해 관측 데이터를 판매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2022년 이후 생성형 AI와 기상 특화 AI가 급속히 발전하자 단순한 데이터 공급업체에서 AI 예보기업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회사가 최근 공개한 AI 모델 '웨더메시(WeatherMesh)-6'는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의 전통적인 수치예보와 기존 AI 모델을 모두 뛰어넘는 정확도를 목표로 개발됐다.
특히 지표면 온도 예측에서는 기존 예보가 하루 전에 제공하는 수준의 정확도를 최대 닷새 전에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또한 기존 수치예보가 6시간 간격으로 갱신되는 것과 달리 1시간마다 새로운 예측을 생성하고, 미국 본토에서는 최대 3㎞ 해상도의 세밀한 예보도 제공한다.
윈드본이 주목받는 이유는 AI 알고리즘보다 데이터 경쟁력에 있다.
현재 회사는 전 세계 15개 기지에서 약 400개의 기상풍선을 동시에 띄워 대기 정보를 수집한다.
대부분 AI 기상모델이 ECMWF나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공개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과 달리, 윈드본은 자체 관측한 원천 데이터를 AI 모델에 직접 입력한다. 중간 가공 과정을 최소화해 데이터 손실을 줄이고 예측 정확도를 높인 것이다.
존 딘 윈드본 최고경영자(CEO)는 "데이터 우위 없이 AI 기상회사를 운영하는 사업모델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초기 예보 데이터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낮추더라도 높은 성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AI 시대에도 결국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알고리즘보다 독점적인 데이터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주목된다. 기존 슈퍼컴퓨터 기반 수치예보는 대기의 운동 방정식과 열역학 법칙 등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계산량이 방대해 대형 슈퍼컴퓨터가 필수적이며, 각국 기상청도 수천 개의 프로세서를 동원해 하루 수차례 예보를 생산한다.
하지만 최근처럼 기록적인 폭염이나 집중호우, 초강력 태풍처럼 과거에 드물었던 극단적 기상현상이 빈번해지면서 물리모델만으로는 실제 날씨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초기 관측 데이터에 작은 오차만 생겨도 예보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한계도 지적된다.
반면 AI는 과거 수십 년간 축적된 방대한 기상 패턴을 학습해 계산 속도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상당한 정확도를 확보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도 AI 기반 기상예보 모델 개발에 적극 투자하는 이유다.
다만 전문가들은 AI가 모든 상황에서 기존 수치예보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극단적 기상현상이나 전례 없는 재난에서는 여전히 물리 기반 모델이 강점을 보이는 경우도 있어, 당분간은 AI와 슈퍼컴퓨터 기반 수치예보를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이 주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윈드본은 이미 NOAA를 비롯해 미국 공군과 해군에 기상 데이터를 공급하고 있으며, 투자기관과 원자재 트레이더들에게 맞춤형 기상예보도 제공하고 있다. 에너지와 농산물, 금속 가격은 날씨 변화에 민감한 만큼 정확한 기상정보가 곧 투자 수익으로 연결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회사는 소비자용 서비스를 서둘러 확대하기보다 AI 모델과 데이터 인프라 구축에 집중할 계획이다. 딘 CEO는 "2년 뒤에는 사람들이 AI 에이전트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지금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별도의 SaaS 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윈드본의 경우가 AI 경쟁의 중심이 범용 생성형 AI에서 산업 특화 AI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고 있다.
앞으로 기상산업의 승패는 관측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이를 얼마나 빠르게 AI가 학습·분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기상이변이 일상이 된 시대에 AI는 기상정보를 새로운 산업으로 만드는 촉매가 되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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