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덮친 ‘히트플레이션’

종로 국숫집 오이대신 무 올려

기후변화, 여름채소 가격 직격

주키니 10kg 한달새 169% 급등

李 “피해 최소화 행정력 총동원”

챗GPT가 그린 일러스트.
챗GPT가 그린 일러스트.

서울 종로에서 국숫집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콩국수와 냉면 위에 오이 대신 얇게 썬 절임 무를 올리고 있다. 본격적인 폭염이 찾아오면서 오이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콩국수 가격은 지난해와 같은 1만원을 유지하고 있지만, 가락시장에서 들여오는 오이값은 한 달 새 두 배 가까이 뛰었다. A씨는 “점심값에 민감한 직장인들이 주 고객이라 가격을 올리지는 못해, 오이를 빼고 기존 가격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콩국수 위에 수북이 올리던 오이와 된장찌개에 넣는 애호박, 여름철 대표 밑반찬인 시금치 등 채소류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공급 과잉을 걱정하던 채소 가격이 불과 몇 주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기후가 장바구니 가격표를 바꾸는 ‘히트플레이션’(폭염+물가상승)이 여름 밥상을 덮치고 있다.

6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이달 들어 가격 상승 폭이 가장 큰 농산물은 호박(주키니)과 시금치, 오이(취청), 애호박 등 여름철 주요 채소다.

이달 3일 기준 주키니는 10㎏ 당 2만5640원으로, 전달보다 168.6% 상승했고, 시금치 4㎏ 가격은 5만580원으로 113.6% 올랐다. 이 밖에 오이 50개와 애호박 20개 기준 가격은 각각 3만5200원과 2만4200원으로 전달보다 각각 99.8%와 87.7% 올랐다. 한 달 사이 채소 가격이 두 배 안팎으로 뛴 셈이다.

기온 상승이 농산물 가격 상승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연구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이 지난 2024년 발표한 ‘기후변화가 국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폭염 등으로 월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할 경우 농산물가격 상승률은 0.4~0.5%포인트(p),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07%p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 상승이 길어질수록 온도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월평균 기온이 1도 오른 상태가 1년간 지속된다고 가정할 때, 1년 뒤 농산물 가격 수준은 2%, 전체 소비자물가 수준은 0.7% 높아지는 것으로 관측됐다.

조병수 한국은행 조사국 물가연구팀장은 “올해도 폭염이 장기화하면서 기온 상승 폭이 커지면 농산물 가격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농산물이 기온 변화에 민감한 품목이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고온이 이어지면 광합성 능력이 떨어지고, 생육 속도가 떨어진다. 열매가 제대로 맺히지 않거나 상품성이 떨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온실에서 재배되는 작물도 마찬가지다. 내부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면 작물이 고온 스트레스를 받고, 수정 불량과 조기 노화 등의 피해가 발생한다.

산지 작업량이 줄어드는 것도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역에서는 농민들이 한낮 작업을 중단한다. 전체 작업 시간이 줄면서 제때 수확하고 선별해 시장으로 보내는 물량이 줄어든다. 지난달 집중호우로 작물의 뿌리가 약해진 상황에서 고온과 가뭄까지 겹치자 생육 부진이 나타났다.

문제는 폭염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기상청은 오는 10일부터 23일까지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을 약 65%, 강수량이 평년보다 적을 확률을 약 50%로 전망했다. 고온과 강수량 부족이 계속되면 채소 출하량이 감소하고, 가격 상승 품목이 배추와 무 등 다른 채소류로 확산할 수 있다.

폭염과 가뭄 장기화로 농작물 피해와 먹거리 물가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 정부도 대응 수위를 높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 서울상황센터에서 폭염·가뭄 대처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극심한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며 폭염과 가뭄으로 인한 국민 피해를 줄이기 위해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당분간 폭염이 지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폭염이 완화될 때까지 전방위 대응 체계를 가동하기 바란다”면서 “극한 기후에 걸맞은 대응책을 강구하고 가용한 인력과 자원을 총동원해 피해 최소화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는 14일까지 폭염·가뭄에 따른 농업 분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국 농업시설 관리 실태에 대한 특별점검을 시행한다.

우선 폭염 장기화에 따른 위험 요인에 대비할 계획이다. 세부적으로는 주요 과채류의 안정적인 출하를 위해 고온 피해를 예방하는 차광도포제를 지원하고, 생육 관리에 필요한 약제·영양제 할인 공급을 전년보다 확대한다. 아울러 주산지 농협 등과 협업해 출하 물량을 조절하는 등 수급 상황을 면밀히 살필 예정이다.

나경연·김윤정 기자 contest@dt.co.kr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