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마인드 의장직 유지… 신약개발사 CEO 겸직
피차이 “AGI 연구해 온 허사비스가 승계 적격”
당장 美 구글 본사로 안 옮기고 英 런던서 근무
당면과제 ‘제미나이 프로’, 종국 목표는 ‘AGI’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49)가 구글 최고 기술 리더인 ‘수석과학자’(Chief Scientist)를 맡는다.
생성형 인공지능(AI)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27년 동안 연구개발을 이끌어온 제프 딘의 후임으로 구글이 허사비스를 낙점한 것은 구글 AI 전략의 무게중심이 ‘검색’에서 ‘인공일반지능’(AGI)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5일(현지시간) 허사비스를 구글 수석과학자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피차이 CEO는 “데미스는 오랫동안 AGI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온 동료”라며 “그보다 이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인사가 단순한 연구조직 개편이 아니라 구글의 미래를 AGI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허사비스는 수석과학자가 된 이후에도 미국 마운틴뷰 본사로 옮기지 않고 지금처럼 영국 런던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후임에게 넘기지만 의장(Chair)직은 유지하며, AI 신약개발 기업 아이소모픽 랩스(Isomorphic Labs)의 CEO도 계속 맡는다. AI와 생명과학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허사비스는 성명을 통해 “평생을 AGI 개발에 헌신해왔으며 그 실현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느낀다”며 “이제는 큰 그림을 그리고 향후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암 치료에 기여하는 것보다 AI의 가치를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례는 없을 것”이라며 AI를 활용한 신약개발도 계속 자신의 핵심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허사비스는 AI 업계에서도 보기 드문 융합형 과학자다. 열세 살에 국제 체스 마스터에 오른 그는 게임 개발사 불프로그에서 AI 게임을 개발한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인간처럼 생각하는 AI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의 뇌부터 이해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영국 AI 연구의 중심지로 떠오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인지신경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컴퓨터공학과 신경과학의 결합은 훗날 딥마인드의 강화학습 연구와 AGI 철학의 토대가 됐다.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그는 2016년 서울에서 열린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역사적인 바둑 대결을 직접 지휘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당시 알파고의 승리는 AI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린 사건으로 각인된다. 허사비스 역시 한국을 AI 발전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장소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허사비스가 줄곧 강조해온 목표는 생성형 AI를 넘어서는 AGI다. 그는 AGI를 인간처럼 다양한 문제를 이해하고 스스로 학습하며 과학적 발견까지 수행하는 범용 지능으로 정의한다.
최근에도 “우리는 특이점(singularity)의 산기슭에 서 있다”며 AI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AGI는 질병 치료와 신소재 개발, 기후변화 해결 등 인류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할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핵기술에 버금가는 안전관리와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이 같은 철학은 연구 성과로도 이어졌다. 허사비스가 이끈 딥마인드는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폴드(AlphaFold)를 개발해 생명과학의 난제를 해결했고, 이를 통해 신약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공로로 그는 지난해 존 점퍼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며 AI가 기초과학의 핵심 연구 도구로 자리 잡았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허사비스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근 구글에서는 제미나이 공동 개발자인 노엄 샤지어가 오픈AI로, 알파폴드 공동 개발자인 존 점퍼가 앤트로픽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번에는 제프 딘까지 회사를 떠났다. 여기에 차세대 AI 모델인 ‘제미나이 프로’의 출시도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구글의 AI 경쟁력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커지는 중이다.
결국 허사비스는 장기적으로는 AGI 시대를 준비해야 하고, 단기적으로는 생성형 AI 경쟁에서 구글의 리더십을 회복해야 하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떠안게 됐다. 구글 AI 전략의 총설계자로 역할이 바뀐 그에게 첫 시험대는 ‘제미나이 프로’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종국에는 AGI 경쟁에서 구글이 첫 테이프를 끊는 일이 될 것이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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