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전기차 시장의 화두는 ‘가성비’였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거세지고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앞다퉈 소형·보급형 전기차를 내놨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넓은 실내와 긴 주행거리, 첨단 안전사양을 갖춘 ‘패밀리 전기차(EV)’가 잇달아 출시되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볼보자동차 EX90,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9, 기아 EV9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대표 모델이다. 모두 3열을 갖춘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지만, 브랜드마다 추구하는 방향은 확연히 다르다.

볼보자동차코리아 EX90 외부 모습. 볼보자동차코리아 제공.
볼보자동차코리아 EX90 외부 모습. 볼보자동차코리아 제공.

◇안전·첨단 브랜드 철학을 담은 ‘EX90’

볼보 EX90은 차를 타는 순간부터 운전자에게 화려함보다 안정감을 먼저 전달한다. 실내는 북유럽 가구를 연상시키는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꾸며졌고, 재활용 소재를 적극 활용했음에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겉모습은 전통적인 볼보 SUV를 닮았지만, 내부는 완전히 달라졌다. EX90에는 자체 개발한 차세대 중앙 컴퓨팅 플랫폼인 ‘휴긴(Hugin) 코어 컴퓨팅 시스템’이 적용됐다. 차량 곳곳에 흩어져 있던 전자제어장치(ECU)를 하나의 고성능 컴퓨팅 플랫폼으로 통합해 차량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구조다. 이 같은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아키텍처는 볼보의 핵심 가치인 안전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기반이 된다. EX90에는 라이다와 레이더, 카메라, 초음파 센서 등이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를 휴긴 코어가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운전자의 시선과 졸음 상태까지 감지해 위험 상황을 미리 판단하고 필요한 경우 경고하거나 차량 제어를 돕는다.

현대차 아이오닉 9. 현대차 제공
현대차 아이오닉 9. 현대차 제공

◇공간이 곧 경쟁력 ‘아이오닉 9’

현대차 아이오닉 9의 가장 큰 무기는 압도적인 공간이다. 휠베이스는 3130㎜에 달한다. 실제로 2열은 물론 3열에 앉아도 무릎과 머리 공간이 여유롭다. 성인이 장시간 이동하기에도 부담이 크지 않다. 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더욱 매력적이다. 유모차와 캠핑 장비를 싣고도 공간이 남는다. 슬라이딩 콘솔과 회전형 시트 등 실내 활용성도 높였다.

운전석에 앉으면 큰 차를 모는 부담도 예상보다 크지 않다. 차체는 대형 SUV지만 무게중심이 낮고 차체 제어가 안정적이라 도심에서도 생각보다 민첩하게 움직인다. 고속도로에서는 노면의 잔진동을 차분하게 걸러내고, 전기차 특유의 정숙성까지 더해져 장거리 주행에서 피로감이 적다. 실내 구성도 가족 중심이다. 슬라이딩 유니버설 아일랜드 콘솔은 앞좌석과 뒷좌석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고, USB-C 포트와 다양한 수납공간도 곳곳에 마련했다. 필요에 따라 시트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 어린 자녀를 둔 가족은 물론 캠핑이나 차박을 즐기는 소비자에게도 활용도가 높다.

기아 EV9. 기아 제공
기아 EV9. 기아 제공

◇여전히 가장 실용적인 선택 ‘EV9’

국내 대형 전기 SUV 시장을 가장 먼저 연 모델은 기아 EV9이었다. 지난 2023년 국내 최초의 대형 전기 SUV로 출시된 EV9은 지금도 이 시장의 기준점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박스형 디자인이다. 실내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직선을 적극 활용했다. 덕분에 3열 공간 활용성이 뛰어나고, 적재공간도 넉넉하다. 캠핑이나 차박을 즐기는 소비자라면 EV9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만하다. ‘V2L’(Vehicle to Load) 기능을 통해 외부 전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다양한 수납공간도 마련돼 있다.

주행 성능도 부족하지 않다. 차체는 크지만 전기모터 특유의 즉각적인 토크 덕분에 고속도로 합류나 추월에서도 답답함이 없다. GT-라인 모델은 대형 SUV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경쾌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EV9은 세 모델 가운데 가장 ‘다목적’ 성격이 강한 차다. 출퇴근부터 장거리 여행, 레저 활동까지 한 대로 해결하려는 소비자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세 모델은 모두 ‘가족을 위한 전기 SUV’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지향점은 다르다. EX90은 소프트웨어와 안전 기술, 아이오닉9은 공간 활용성과 장거리 이동의 편안함, EV9은 레저와 일상을 아우르는 실용성에 초점을 맞췄다.

전기차 시장의 경쟁이 단순한 가격이나 주행거리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얼마나 만족시키느냐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임주희 기자 ju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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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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