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차 첫 과반… 전동화, ‘미래’ 아닌 ‘현재’로

주행 거리·충전 속도·안전 기술 빠르게 진화

‘전기차가 좋냐’보다 ‘내 생활에 맞느냐’가 중요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전기차 사려고 하는데 지금 사도 괜찮을까요?"

자동차 담당 기자가 된 뒤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다. 몇 년 전만 해도 전기차는 '얼리어답터의 차'에 가까웠다. 충전소를 찾아 헤매야 했고, 겨울이면 주행거리가 크게 줄었으며, 보조금 없이는 가격 부담도 컸다. 배터리 화재 이슈까지 겹치면서 "조금 더 기다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올해 상반기 국내 신차 시장에서는 처음으로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수소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차 비중이 내연기관차를 넘어섰다. 그중 전기차는 19만8969대가 판매되며 작년 상반기보다 112.6%나 증가했다. 현대자동차·기아는 매년 새로운 전기차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으며, 여기에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산 전기차가 대거 유입되며 수입차 시장에서의 전기차 비중도 늘어났다. 업계에서는 전동화가 더 이상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흐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말 이제는 전기차를 사도 되는 걸까.

아이오닉 9. 현대차 제공
아이오닉 9. 현대차 제공

5년 전 전기차와 지금의 전기차는 다르다

전기차를 둘러싼 환경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배터리 기술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 번 충전하면 300㎞ 남짓 달리는 모델이 적지 않았다. 지금은 500~600㎞를 넘기는 차량이 흔해졌고 일부 모델은 700㎞ 안팎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충전 속도도 크게 개선됐다. 현대차그룹의 E-GMP 플랫폼처럼 800V 초급속 충전 시스템을 적용한 차량은 20분 안팎이면 배터리를 80% 가까이 채울 수 있다. 장거리 이동 중 휴게소에서 식사 한 번 하는 동안 대부분의 충전이 끝나는 수준이다.

가격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적용 모델이 늘어나면서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 업체들의 공세까지 시작되면서 가격 경쟁은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했던 요소들이 하나씩 개선되고 있는 셈이다.

BMW '더 뉴 iX3'가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 '400㎾ 초급속 충전기'에서 충전되고 있다. BMW 그룹 코리아 제공
BMW '더 뉴 iX3'가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 '400㎾ 초급속 충전기'에서 충전되고 있다. BMW 그룹 코리아 제공

충전은 아직 불편하지 않나요?

전기차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은 여전히 충전이다. 하지만 이 역시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국내 급속충전기는 꾸준히 늘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물론 대형 쇼핑몰과 마트, 공공시설, 아파트 단지까지 충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예전처럼 충전기를 찾아 몇 ㎞를 돌아다니는 일은 점차 줄어드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완성차 업체들이 직접 충전 인프라 확대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현대차그룹은 초고속 충전 브랜드 '이피트'(E-pit)를 전국 주요 거점으로 확대하고 있다. BMW코리아도 초급속 충전망을 지속적으로 늘리며 전기차 고객의 충전 편의성을 높이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테슬라 등도 자체 충전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추세다. 민간 충전사업자의 투자도 활발하다. 채비 등 사업자들은 초급속 충전기 설치를 확대하고 있으며, 이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통합 애플리케이션과 예약 서비스도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물론 충전 환경이 모든 지역에서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오래된 아파트나 지방 일부 지역은 여전히 충전기 부족 문제가 남아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앞으로 충전 인프라 확충 속도가 차량 보급 속도를 따라잡으면서 불편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겨울에는 정말 반 토막 나나요?

배터리는 추위에 약하다. 겨울철에는 난방에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행거리가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과거처럼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경우는 드물다. 최근 출시되는 차량들은 히트펌프와 배터리 열관리 시스템이 대부분 적용돼 계절에 따른 성능 저하를 상당 부분 줄였다.

히트펌프는 열을 새로 만들어내기보다 차량 안팎에 이미 존재하는 열을 끌어모아 실내로 옮기는 기술이다. 냉매를 순환시키면서 외부 공기와 배터리, 모터, 인버터 등에서 발생한 열을 회수해 난방에 활용한다. 같은 온도로 실내를 데우더라도 전기식 히터보다 적은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만큼 주행에 쓸 수 있는 배터리 에너지를 더 남길 수 있다. 물론 영하 10도 이하의 혹한에서는 여전히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처럼 일반적인 겨울 환경에서는 과거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극단적인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현대모비스가 열폭주를 방지하기 위해 개발한 배터리시스템 모형. 현대모비스 제공
현대모비스가 열폭주를 방지하기 위해 개발한 배터리시스템 모형. 현대모비스 제공

화재는 괜찮을까요?

지난 몇 년 동안 전기차 화재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다. 지하주차장 화재 이후 전기차를 기피하는 분위기까지 생겼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가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차량 바닥에 실려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전기차에는 배터리 이상을 미리 감지하고, 전류를 차단하며, 하나의 배터리 셀에서 발생한 문제가 주변으로 번지는 것을 늦추기 위한 여러 단계의 안전장치가 적용된다.

문제가 발생한 셀만 정확히 찾아 초기 단계에서 진압하려는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배터리 셀의 이상을 감지하면 해당 위치에 소화약제를 직접 분사해 주변 셀로 열이 번지는 것을 막는 배터리 셀 단위 소화 시스템을 개발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화재 위험 자체보다 관리 체계가 크게 달라졌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기능이 강화됐고, 제조사들도 배터리 이상 징후를 원격으로 감지하는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충전할때 뿐만 아니라 주행 중과 차량이 멈춰 있는 동안에도 배터리 상태를 진단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 공개, 안전진단 강화 등 제도적인 변화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위험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전기차는 몇 년 전보다 훨씬 많은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테슬라 모델 Y 주니퍼. 테슬라 제공
테슬라 모델 Y 주니퍼. 테슬라 제공

중고차 가격은요?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중고차 가격이다. 배터리 성능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내연기관차보다 감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최근에는 제조사 인증중고차 사업이 확대되고 배터리 보증 기간도 길어지면서 시장이 조금씩 안정되는 모습이다. 배터리 잔존 성능을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제도도 확산되고 있다. 시간은 더 필요하지만 예전보다 불확실성은 줄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더 기아 PV5 패신저. 기아 제공
더 기아 PV5 패신저. 기아 제공

전기차 사도 될까요?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전기차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차가 아니라 조건에 맞는 사람에게 최고의 차다.

출퇴근 거리가 일정하고 집이나 회사에서 충전할 수 있으며 연간 주행거리가 많은 사람이라면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반면 장거리 이동이 잦고 충전 여건이 마땅치 않으며 충전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사람이라면 아직 하이브리드차 가 더 현실적인 선택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이제 소비자들이 "전기차가 좋은가"보다 "내 생활에 맞는가"를 따지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실제로 시장도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가 함께 성장하며 소비자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

자동차를 취재한 지난 몇 년 동안 전기차는 가장 빠르게 변한 제품이었다.

충전은 빨라졌고, 주행거리는 길어졌으며, 가격은 조금씩 낮아졌다. 안전 기술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충전 인프라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고, 중고차 가격도 더 안정돼야 한다. 배터리 기술 역시 계속 발전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있다. 2026년의 전기차는 더 이상 '시기상조'인 자동차는 아니다.예전 같으면 조금 더 기다리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생활환경만 맞는다면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

임주희 기자 ju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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